모국어에만 친절한 귀
2015-08-26 (수) 12:00:00
샌프란시스코는 손꼽히는 관광도시다. 한해 관광 유동인구는 약 1,700만 명, 이곳의 거주인구는 약 80만 명이다. 여기서 아주 신기한 경험을 할 때가 있다. 서울의 시청 앞 지하철역만큼이나 바쁜 속에서 한국인들의 웃음소리와 말소리만큼은 똑똑히 구분한다.
케이블카의 경적 소리, 관광버스 소리, 여러 다른 나라에서 온 여행객들의 대화소리 등 소음으로 수 미터 밖의 말소리는 들리지 않아야 정상이다.
그런데 그 와중에서도 한국인들의 소곤거림은 신기하게도 잘 들린다. 한국에서 성인이 될 때까지 성장한 내 귀의 소리 인지기관은 한국어에만 예민하다. 한국어는 그 목소리가 어떻든 별나게 생각될 정도로 잘 잡아내는데 다른 소리에는 무디다. 영어가 안 들린다는 말을 했을 때 지인들은 핀잔을 주지만 내 귀는 모국어의 영향 아래 아주 자연스럽게 잘 자란 것이다.
모국어에만 친절한 귀를 가진 나는 이곳에서 영어로 가슴의 소리를 전달하지 못해 답답할 때가 많다. 섭섭하다, 아쉽다, 서운하다 같은 감정이 구체적인 단어들을 전하고 싶으니 딱한 거다.
국어사전을 찾으면 섭섭하다는 아쉬운 감정이고, 아쉽다는 섭섭한 감정이다는 식의 무책임한 언어적 풀이가 전반적이다. 그 단어를 영어로 말한다는 것은 섭섭함 일부와 아쉬움 일부, 그리고 서운함 일부를 거칠게 싸잡아 표현하는 길밖에 없다.
내 귀에 모국어만큼 들리지 않는 온갖 소리처럼 영어로 쓰는 감정표현은 아주 제한적이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사전을 뒤적거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