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힘없는 깡패

2015-08-26 (수)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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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대남선전사이트 ‘우리민족끼리’는 23일 “남한 청년들이 국외로 빠져나가느라 비행기 표 값이 10배 폭등했다” “인천의 한 백화점에서 식료품 사재기로 난장판이 일어났다”는 황당한 보도를 내놨다. 목함 지뢰 사태를 일으키고 준전시 상태를 선포한 북한이 진정 원한 것이 무엇인지 스스로 속내를 드러내 보인 셈이다.

그러나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국민들은 침착했고 정부는 단호했다. 오히려 군 장병들이 휴가를 반납하는가 하면 제대까지 연기했다. 김정은이 그토록 싫어한다는 대북 확성기 방송을 시작했고 이를 공격할 경우 원점 대응 사격을 하겠다고 맞섰다. 전에는 일만 터지면 북한 편을 들던 좌파 언론도 조용했고 종북 단체들의 준동도 없었다.

처음 기대한 것과는 사태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자 북한은 조용히 꼬리를 내렸다. 나흘간의 마라톤회담 끝에 북한은 25일 자신을 주어로 해 목함 지뢰 사태에 대한 “유감”을 표명했다. 과거 수많은 도발 행위를 저지르고도 오리발을 내밀던 북한이 스스로를 주어로 해 잘못을 시인한 것은 이번인 처음이라 한다. 일부에서는 “사죄”라는 표현이 빠졌다고 불평하지만 김씨 일가가 신인 북한이 그런 말을 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어째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국민과 정부, 야당과 언론의 단합된 모습이 일단 북한을 당황케 했다는 분석이다. 과거 북한이 사건을 일으키고 협박을 하면 한국이 원하는 것을 들어주곤 했는데 더 이상 그것이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게 됐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보다 근본적인 것은 뚜렷이 벌어진 남북한 화력 차이라는 지적이 힘을 얻고 있다. 북한군의 전력은 겉으로 보기에는 화려하다. 국방부 발표에 따르면 북한군의 야포는 8,600여문에 달하며 대부분이 휴전선 인근에 배치돼 있다. 그러나 이들 대부분은 고물로 한국군의 주력 화포인 K9 자주포와 성능 면에서 비교가 되지 않는다. 잠수함은 70여척, 전투기 800여기, 탱크 4,000여대 등 수적으로는 한국보다 2배 정도 많지만 한미연합사가 보유하고 있는 무기와 정면으로 붙을 경우 게임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더구나 지금 북한은 식량이 없어 군인들이 민가를 습격해 먹을 것을 훔치고 석유가 없어 훈련을 못하는 상황이다. 거기다 지금 북한의 최대 지원국인 중국은 금융 위기로 ‘제 코가 석자’인 형편이다. 중국이 최근 한반도 사태에 대해 자제를 당부하자 “자제 타령” 그만 하라며 북한이 반발한 것도 중국의 미온적 태도에 대한 북한의 불만을 보여준다. 중국이 석유 공급을 중단하면 온 나라가 마비될 것이 뻔한 상황에서 전쟁을 할 수는 없는 일이다.

어쨌든 이번 사태로 일촉즉발로 치닫던 한반도는 대화를 통한 평화를 구축할 수 있는 전기를 맞게 됐으며 온 국민과 정부가 똘똘 뭉친다면 북한은 더 이상 두려워할 상대가 아니라는 값진 교훈도 얻게 됐다. 북한의 협박은 약발이 다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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