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묘향산 가는 길, 소월의 고향서 벼를 베다”

2015-07-17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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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주머니에 “살만하십니까” 물으니 희미한 웃음

▶ 백년 만의 가뭄에 여기저기 메마른 골짜기

“묘향산 가는 길, 소월의 고향서 벼를 베다”

묘향산 골짜기, 놀러온 주민들과 술 한 잔 나누었다.

“묘향산 가는 길, 소월의 고향서 벼를 베다”

북한 주민들과 함께 나락을 벴다. 1 정보당 5톤 정도 수확할 거라 한다.

[④ 정찬열씨의 북한 여행]


◇ 묘향산 가는 길

아침 8시30분, 묘향산을 향해 출발. 김참사가 운전사에게 말을 건넨다.


“방동무, 까쓰가 충분한가 보라우” “한 눈깔 밖에 안 남았시유” “기러먼까쓰를 넣고 갑세다”

평양을 벗어나자 가을 들녘이다.

추수하는 사람들이 보인다. 벼를 베다 만 논, 볏단을 묶어 쌓아 놓은 모습도 보인다. 정겨운 모습이다. 남녘에서는 이제 저런 모습은 거의 사라졌다. 트렉터로 나락을 베어 알곡은 포대에 담고 볏집은 둥그렇게 기계로말아 하얀 비닐 덩어리를 논바닥에 남긴다.

마을이 보인다. 2, 3층 아파트다. 고속도로를 따라 달린다. 앞뒤로 자동차가 보이지 않는다. 길을 전세 내어달리는 기분이다.

청천강에 이르렀다. 차에서 내렸다.

강바람을 맞으며 다리를 건너간다.

강을 경계로 평안북도와 남도가 나뉜다. 영변 땅이다. ‘영변 약산 진달레꽃...’ 소월의 고향이다.


길모퉁이를 돌자 왼쪽으로 골짜기논이 보인다. 대여섯 명 여인들이 벼를 베고 있다. 논두렁을 따라 벼 베는 곳으로 걸어가자 모두들 의아해하며 바라본다. 아주머니께 낫을 빌렸다. 타닥 타가닥 타닥, 리듬을 타고나락을 벤다. 몇 십 년 만에 낫을 들고 벼를 베어본다.

한참을 벴다. 숨이 차다. 아주머니에게 “어째, 살만하십니까,” 하고 물으니. 대답은 않고 희미하게 웃는다. 감독관인 성싶은 남자에게 작황을 물었더니, 정보 당 5톤 정도 수확할 성싶다고 한다. 건너편 밭에서 십여 명이 콩걷이를 하는 모양이다. 경운기도 보이고 달구지도 보인다.

◇ 묘향산 골짜기 점심 풍경

다시 차를 탔다. 묘향산 입구 도착, 냇가를 따라 올라간다. 코스모스가 피었다. 물이 거의 말랐다. 백년 만의 가뭄이란다.

국제친선관. 외국에서 김일성, 김정일 부자에게 보내온 선물을 전시해놓은 곳이다. 김 참사와 내가 관람하는 동안 운전사가 마을에 내려가 점심을 준비해 오기로 했다.

관람을 끝내고 나오니 비로봉 올라가는 근처 냇가에서 점심을 먹자고 한다. 물이 맑고 깨끗하다. 놀러온 사람들이 보인다. 예닐곱명이 철판에고기를 굽고 있다. 미국 교포인데 합석해도 괜찮냐고 물었더니 어서 앉으라며 자리를 내준다.

평양에 사는데, 회사 창립기념일이라 직장 동료, 가족과 함께 놀러왔다고 한다. 저쪽 냇가에 어린 아이들 몇이 물장난을 치고 있다.

소고기, 오리고기를 굽고 있다. 인삼주를 따라준다. 액기스란다. 독하다. 숨이 컥 막힌다. 칠색 송어회, 라며 20세 아가씨가 상추에 고기를 싸준다. 좀 놀랐다. 미국에서 왔다고 하니 이런저런 질문을 한다.

모두들 술이 얼큰해졌다. 노래 가락이 나오기 시작한다. 영변이 고향이라는 22살 아가씨가 노래를 부른다. “나는야 비단처녀 영변의 비단처녀/우리의 운명과 우리의 행복은 장군님께 달렸기에/ 장군님의 안녕을 빕니다”

약산에 대해 얘기를 해달라고 하자, 리향금이라는 영변 아가씨가 “영변군 약산읍이란 말입네다. ‘일봉’이라고 엄지손가락을 닮은 봉우리가 있단 말입네다. 구룡강이 약산을 휘어흐릅네다” 말끝마다 ‘네다’가 붙는다.

운전사 방동무가 “장군님 가까이에 병사가 있다네”란 노래를 부른다.

그러고 보니 저쪽 사람들도 노래판이 벌어졌다. 여기도 노래, 저기도 노래, 골짜기에 노래가 울려 퍼진다.

돌아가며 노래를 부르는데 모두 ‘장군님을 칭송하는’ 내용이다. 저런 노래를 부르면서 어떻게 저리도 흥에 겨워 놀 수가 있는지 이해되지 않는다. 그런 내 심사를 읽기라도 한 듯, 김 참사가 “쨀래꽃 붉게 피는 남쪽나라....”를 내놓는다.

날더러 한 곡 부르라기에 ‘진도아리랑’을 불렀다. “아리 아리랑, 스리스리랑...” 덩싱덩실 춤을 추며 노래를불렀다.

미국에 돌아온 다음, 어떤 분에게 노래 얘기를 했더니, “종교에 심취한 신자들이 찬송가를 흥겹게 부르듯, 오랫동안 장군님 노래를 부르면 그렇게 되지 않겠습니까” 반문한다. ‘다른것’과 ‘틀린것’을 혼동하지 말라고 덧붙인다. 한 수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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