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다나에 대한 기억, 사랑

2015-02-20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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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순(수필가)

어떤 기억은 늘 생생하다. 언제나 현재처럼 또렷하다. 토요 한국학교 교사를 다시 시작하고 보니 기억 속의 다나가 그렇다. 다나에 대한 기억은 하얀 종이위의 그림처럼 선명해서 어제 일 같다. 지금은 스무 살도 훨씬 넘었을 다나에 대한 기억은 미안함이고, 다 못해준 사랑에 대한 죄스러움이다.

처음 한국학교 교사가 되었던 봄 학기의 첫날, 내가 담임하게 된 수련반에 다나가 얌전히 앉아 있었다. 말소리가 작고 몸집도 가냘 펐으나 문제아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초등학교 3, 4학년이었던 반 아이들에 비해 나이는 두 살 정도 위가 아니었을까 싶다. 예쁘고 상냥한 아이였으나 지적장애가 있음을 나중에야 알게 됐다. 정서적으로도 불안정해서 학습 중에 자주 화장실에 가야했다. 그렇지 않으면 교실 안을 돌아다니거나 “선생님, 예뻐, 예뻐”하며 내 곁에서 맴돌았다.


첫 날은 그런대로 지났으나 같은 일이 반복되자 나는 학교 측에 ‘개인학습이 필요한 아이’로 보고했다. 다나를 보통아이들 속에서 키우고 싶어 했던 다나 부모님의 간청은 들어드릴 수가 없었다. 내 관심과 사랑은 다른 아이들에게도 똑같이 배려되어야 했기 때문이었다.

다나가 개인 학습을 받기 위해 교실을 떠나던 날, 나는 걷잡을 수 없이 눈물이 솟았다. 다나가 정상적인 아이가 아니라고 교실 밖으로 내쳐버린 것 같아 미안했고 슬펐다. 또한 다나가 짊어지고 가야할 생(生)의 무게가 아프게 느껴졌다.

다나는 다음 학기에 등록하지 않았고, 나는 다나를 더 이상 볼 수도 사랑할 수도 없게 되었다. 학교 복도에서라도 마주치면 “다나 참 착해. 참 예뻐”라며 머리라도 쓰다듬어 줄 수가 있었을 텐데$. 나는 그럴 수조차 없게 되고 말았던 것이다. 내 스승님들이 내게 주셨던 그 따뜻한 손길을 평생 기억하면서 힘을 얻곤 했던 나는 다나에게 그런 사랑을 주지 못하게 됐다.

이번 학기에 가르치게 된 어린이들의 순수하게 반짝이는 눈망울들을 보며 나는 다나가 더욱 보고 싶어진다. 다나는 어떻게 성장했을까? 다나가 정말 잘 자랐으면 좋겠다. 다나에 대한 기억은 그때, 그 시간에 다 주지 못했던 내 사랑에 대한 미진함이고, 용서를 구하는 사랑의 마음이다.
“다나야, 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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