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오늘 하루 이 창 열지 않음닫기

독자 방인숙의 천섬과 캐나다 여행수필<1>

2015-01-23 (금)
크게 작게

▶ 1,864개 섬 모인 위대한 영혼의 정원

▶ 온타리오 호수 북쪽은 캐나다. 남쪽은 뉴욕주와 연결

독자 방인숙의 천섬과 캐나다 여행수필<1>

천섬의 원경

독자 방인숙의 천섬과 캐나다 여행수필<1>

볼트성

“우정은 철학이나 예술처럼 인간의 생활에 꼭 필요한 것은 아니다.//그러나 삶을 유지하는데 있어서 참된 가치를 준다.” J. R. R 톨킨의 <친구>란 책에 나오는 한 대목이다. 그런데 ‘우정’대신에 ‘여행’이란 단어를 대입해 봐도 마음에 쏙 든다. 해서 친구 5명과 가을여행길에 나섰다. 등잔 밑이 어둡지 않으려고 행선지를 천섬과 캐나다로 정했다.

나한테 천섬은 낯설지 않다. 20여 년 전 여름, 친한 두 가족과 캐나다 쪽의 호반휴양지에 머문 적이 있다. 그때 돌아오는 길에 미국과 캐나다를 연결하는 천섬다리(Thousand Island International Bridge)옆의 Hill 섬에 들렸다. 거기서 높이 400피트의 스카이댁 전망대서 최초로 접한 천섬은 정말 낙원의 세계였다.

크고 작은 초록 섬들이 푸른 강에 연꽃처럼 오밀조밀 떠있는데 완전 동화왕국이었다. 또 그 왕국은 섬 주인들만 왕래하고, 일반인들은 접근금지로 이처럼 훔쳐보듯 멀리서 눈요기만 하는 거구나 여겼다. 천섬의 모습과 내 기억은 그게 다였다.


그런데 천섬에 유람선이 다니고 직접 내방할 수도 있단다. 그것도 모르고 먼 하늘에 달 쳐다보듯 했던 걸가지고 천섬을 봤다고 해왔다. 그동안 쭉 거짓말을 한 셈이다.
가이드가 ‘전설 따라 천섬’을 들려줬다. 신이 보니까 인간들이 신의 바람대로 평화롭게 안 살고 줄 창 전쟁만 하더란다. 신은 ‘왜들 저러나?’고민 끝에 ‘환경이 아름다워지면 싸우지 않겠지’하곤 ‘멋진 정원’을 인간 세상에 펼쳐놓았다.

과연 신의 뜻대로 한동안은 조용히 잘 살더니 또 다시 싸움 병이 도지더라나. 화가 난 신이 ‘예쁜 정원’을 회수해 올라가다가 실수로 보따리를 떨어뜨린 지점이 바로 이 천섬지역이란다. 왜 인디언들이 천섬주변을 ‘신들의 정원’이자 ‘위대한 영혼의 정원’이라 불렀는지 납득이 된다.

천섬의 근원은 5대호 중, 가장 낮은 지역이자 가장 동쪽, 가장 작은, 경상북도만한 온타리오 호수다. 이 호수는 북쪽은 캐나다 온타리오 주와 면해있고 남쪽은 미국 뉴욕 주랑 연결돼있다. 보통 큰 강은 여러 지류가 합쳐 이루어진다.

그런데 온타리오 호수는 미국과 캐나다의 국경사이에 형성된 좁은 수로를 따라 흐르다가 세인트 로렌스(St Laurence) 강이라는 큰 강으로 변해 대서양에 이른다. 바로 그 큰 강으로 변하는 지점에 천섬들이 모여 있다. 강물 가운데에 보이지 않는 두 나라의 국경선이 존재해 해안경비대가 주둔하고 있고.

천섬은 정확하겐 작은 돌덩이 섬까지 포함시켜 1864개란다. 그럼 이름이 2천섬이래야지 왜 천섬이지? 의문부호다. 천섬들 사이에서 ‘나도 천섬이요’하고 끼려면 적어도 세 가지 자격심사에 통과해야한다. 첫째 365일 내내 물 위로 솟아있을 것. 둘째 적어도 나무가 두 그루 이상 있을 것. 셋째 면적이 1평방피트 이상일 것.


미국 쪽 제일 큰 섬은 Wesley고 캐나다 쪽 큰 섬은 Hill이다. 모든 섬들은 미국과 캐나다부호들의 여름별장인데, 일본인 섬도 하나 있지만 한국인 것은 아직 없단다. 섬들은 반반씩 미국령, 캐나다 령인데 캐나다정부의 소유인 섬도 21개란다.

나이아애가라 폭포를 미국과 캐나다로 양분해 보듯, 천섬도 양쪽나라에서 출항하는 보트투어들이 시간과 코스가 조금씩 다르다. 우린 당연히 미국 땅에서 ‘엉클 탐’이란 배를 탔다. 멀리 한강의 두 배도 넘는다는 세인트 로렌스 강을 가로지른 천섬다리가 시야에 들어온다. 다리를 배경으로 한 주변의 풍정이, 세계 3대 미항인 시드니에서 시드니하버 브릿지를 배경으로 선유하던 유람선을 상기시켜준다.

뉴욕겨울철새인 목과 머리가 검고 볼만 흰색인 캐나다 거위(Canadian Goose)들이 바로 온타리오 호에 있다가 천섬을 경유해서 온단다. 초가을이라 거위들은 없지만, 날개 끝이 까만 갈매기들만 배를 따라 맴돈다. 저 새들은 하루에 몇 번씩이나 두 나라를 월경할까? 여권도 없이 두 나라를 왕래하는 저 청둥오리들도 상팔자다. 이런 아름다운 환경에서 수시로 해외여행까지 하니 모두들 선택된 사실임엔 틀림없다.


섬들 사이를 지그재그로 가는 유람선에서 보니, 크고 작은 기기묘묘한 섬들이 자연의 미를 최대한 살렸다. 기암괴석과 나무들이 즐비하다. 목장까지 있는 큰 섬도 있고, 아담하고 예뻐 이름이 ‘허니문’이면 딱 좋을 섬, 무인도 같은 섬도 보인다. 몽돌바위들만 있는 어떤 섬엔 등대 같은데 작아서 독수리 집처럼 보이는 게 있다. 어느 시에선가. ‘등대는 별에게 부치는 외로운 이들의 우체통’이라 했다.

정말 별에게만 편지를 부칠 맞춤형 등대다. ‘톰 소여’의 통나무집과 벤치 두 개, 나무 두 그루만으로 꽉 찬 작은 섬도 있다. 수면이랑 별 차이가 없는 집은 비가 조금만 와도 물이 넘실대겠다. 큰 비나 폭풍이 칠 땐? 내가 괜히 엄마무덤이 아닌데도 청개구리 심정이 돼 걱정이 앞선다. 묵고가라는 초대장을 줘도 사양하겠다. 절대 잠을 못 이룰 테니까. 알고 보니 일 년 내내 수면 높이가 변동이 없다지만 말이다. 하여간 모든 집의 풍광이 동화 속 강 나라다.

모든 섬 집엔 배 하나씩은 필수겠다. 또 어느 국가 소속인지 국기도 반드시 달아야하고. 자비콘(Zavicon)이란 조금 큰 섬 옆에 작은 섬이 있다. 이웃사촌인 두 섬을 연결해주는 약간 둥근 다리가 세계에서 가장 짧은 국경다리란다. 그 다리 난간에 큰 섬 쪽은 캐나다 국기, 작은 섬 쪽엔 성조기가 그려져 있다. 불과 몇 분 만에 국경을 수시로 왕래 할 터. 재밌겠다. 멀고도 먼, 갈 수도 없는, 판문점 ‘자유의 다리’가 묵직하게 가슴에 와 얹힌다.

도대체 하수문제는 어떻게 해결하기에 물이 이토록 맑을까? 그나저나 섬들과 섬들의 공중에 전깃줄이 없는 것도 신기하다. 알고 보니 모든 전기시설과 엄격한 하수처리설비가 강 지하에 매설돼 있어 염려 끝이란다.

인제 천섬 관광의 최고 볼거리인 100년도 넘은 볼트성에서 하선했다. 이 성은 북아메리카의 라인 강변이라 불리는 알렉산드리아 베이 쪽에 있는 5에이커의 하트 섬에 있다. 하늘에서 보면 정확한 하트형은 아니지만 어느 각도에선 하트로 보인다니 이름값을 하긴 한다. 이 성에 얽힌 로맨틱한 러브스토리랑 매치시키려고 하트로 명명했다는 감이 온다.

볼트성은 독일 라인 강 주변, 북유럽의 랜드 마크 같은 16세기 라인 랜드 스타일의 성을 모델로 했다. 또한 섬의 방문객들은 성을 지은 호텔업의 왕 George. C. Boldt의 낭만적이고 슬픈 사연에 마음이 젖어들게 마련이다. 옛 독일북부의 왕국인 프러시아 태생인 볼트는 가난한 부모를 따라 10대에 미국으로 이민 왔다. 1891년, 볼트가 40살이 되던 해엔 필라델피아에서 작은 호텔을 운영하고 있었다.

어느 날 새벽 1시쯤, 폭풍우가 심하게 몰아칠 때, 남루할 만치 소박한 행색의 노부부가 묵고 갈 방을 찾았다. 빈 객실이 없지만 볼트는 워낙 악천후라 노부부의 딱한 사정을 외면할 수 없었다. 주변의 호텔까지 다 알아봤지만 허사라 결국 자기 침실을 내줬다. 다음날 노부부는 "당신처럼 친절하고 진실한 인간은 미국 최고급호텔의 책임자감이다. 언젠가 당신을 위해 큰 호텔을 지으면 연락을 하겠다."하곤 떠났다. 그 노부부가 바로 힐튼 호텔의 회장인 윌리엄 월도프 아스트로다.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