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위험한 장난

2014-11-14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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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보고 괴짜라고 하는 친구도 있는데 나는 그 말을 초등학교 일학년 때 친구들을 데리고 금광 찾는다고 산을 헤매고 다니다 단체 퇴학 맞고 나서 부터였다. 나는 당시 반짝반짝하는 사금파리를 들고 친구들한테 이 근방에 금광이 있다고 설득했다.

사금파리를 보여주면서 “여기 돌에 묻은 게 금이다.” 그런데 나는 정말 금인 줄 알았는데 친구들도 나처럼 금이라고 생각했을까? 그게 요즘 들어 궁금해진다. 그러다 5학년 때 무술 배운다고 절에 가서 설쳤던 일, 설악산 가서 도깨비 잡는다고 12살짜리가 쫓아다녔던 일, 나에게는 왜 그런 일들이 생기는지 한마디로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고 나는 지금도 겁이 없다.

겁이 없는 건지 무모한건지 나는 비오면서 천둥번개 치는 날이 좋다. 이곳 수영장은 5층 높이로 탑을 쌓고 그 위에서 폭포가 내려오도록 돼있다. 그 5층 꼭대기에는 덱으로 만들어 놨는데 이 5층탑이 사방 100리 안에서는 제일 높다. 앞쪽에는 대서양이 있고 뒤로는 지평선인데 얼마나 천둥번개가 현란하겠나.


어떤 때는 짜릿짜릿해 남들이 보면 거기서 벼락 맞을 텐데 하는 생각도 할 것이다. 그런데 나는 벼락 맞을 놈은 안에서도 맞는다 하는 식의 상당히 위험한 발상을 하고 있었다. 만약 내가 잘못돼서 의식이 없으면 살리지 말라고 가족들에게 부탁했다. 알게 모르게 나는 죽음이라는 화두를 가지고 많이 생각해 봤다. 죽음이라는 공포가 있기에 종교도 있고 그나마 자제하고 살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하고 말이다.

어느 날 아내가 목수를 몇 명 데리고 오더니 지붕을 씌우고 그 위에다 피뢰침을 다섯 개나 달아놓았다. 내가 뭐하느냐고 물으니까 대뜸 하는 소리가 당신 미쳤냐는 거다. 저 밑에 있는 나무도 벼락 맞았는데 그 위에서 뭐하는 거냐고. 나하고 있는 스패니시가 알린 것이다. 자기가 생각해도 위험해 보였는가보다.
그런데 지붕은 씌웠어도 사방이 다 뚫렸으니 천둥번개 소리는 여전하다. 지금은 비를 직접 안 맞으니 좋긴 한데 피뢰침 때문에 안전하다는 생각에서인지 전처럼 짜릿한 맛은 별로다.

저녁을 먹고 어둑해지면 개들을 데리고 산책을 나간다. 불빛이 비치는 곳을 한 바퀴 돌면 한 시간 정도 걸린다. 맨 앞에 말이 서고 그 뒤를 염소 네 마리가 따른다. 염소는 귀와 뿔이 없는데다 허리가 볼록하게 올라온 게 그레이하운드 개 같이 생겼다. 미국 부부가 애완용으로 키우다가 내가 동물 사랑한다는 걸 알고 우리보고 키워달라고 신신당부해서 키우고 있다.

개들은 천방지축이다. 앞으로 가는 놈, 옆으로 뛰는 놈, 한 놈이 뛰면 같이 뛰고 쫓기는 놈이 잡히면 드러누워서 자기들끼리 난리법석을 떤다. 그중에서 제일 난리를 치는 놈이 집안에서 키우는 몰티즈다. 이애는 보통 때는 가만있다가 나만 있으면 진돗개한테도 달려든다.

처음에는 말고삐를 잡고 산책했는데 이제는 고삐 없이 그냥 간다. 사람도 그렇겠지만 동물들한테는 먹는 것만큼 효과를 보는 게 없는 것 같다. 말은 덩치만 컸지 겁이 무척 많다. 염소보다 더 겁이 많다. 그래서인지 말은 내 꽁무니만 따라온다. 그 뒤로 염소들이 오고 개들은 천방지축이다. 말은 작은 소음에도 놀라곤 한다.

이제는 면역이 돼서인지 안심하는 눈치다. 목적지 정거장에 도착하면 이 애들은 내가 과자를 주는 줄 안다. 개들은 훈련이 돼서 앉아있고 말은 자꾸 머리를 흔든다. 염소들은 통 둘레를 감싼다. 어쩌나 보려고 과자를 안주고 딴 짓을 해본다. 자기네가 여기까지 주인님을 위해 와줬는데 스피드가 늦다 싶으면 말은 주둥이로 어깨를 민다. 염소들은 메엠 소리를 지르며 통 둘레를 돌다가내 허벅지를 머리로 민다. 따라온 몰티즈는 빨리 달라고 폴짝폴짝 뛴다.

옆에 콜리는 짖어댄다. 나는 개들 짖는 소리로 이 애들과 소통한다. 이놈은 뭔가 짜증이 나거나 불만이 있을 때 이렇게 짖는다. 그래도 꼼짝 않고 앉아있는 게 기특하다. 콜리는 내가 입으로 탕하면 죽는다. 한번 죽어주면 특식을 먹을 수 있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이렇게 생활하는 나를 누가 본다면 참으로 한심하다 하겠지만 다행히 아무도 오는 사람이 없다.
김병택 <사업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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