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깡패들에 둘러싸인 법대 교수”

2014-10-14 (화)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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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경훈 논설위원

인터넷 공간을 뜻하는 ‘cyber’는 원래 배의 방향을 조정하는 키를 뜻하는 그리스 말인 ‘kyber’에서 왔다. ‘통치자’를 뜻하는 ‘governor’도 어원을 따져보면 ‘배의 키를 잡은 사람’이란 뜻이다. 배를 몰고 지중해 전역을 누비며 장사를 해 먹고 살았던 그리스 사람들이 보기에는 선장과 국가의 지도자 사이에 비슷한 점이 많았던 모양이다.

훌륭한 선장의 자질은 뭘까. 선장은 물론 배에 대해 잘 알아야 한다. 거기다 바다의 물살과 암초의 위치, 또 계절과 바람의 변화, 폭풍의 조짐에도 밝아야 한다. 그것만이 아니다. 돛을 올리고 노를 젓고 지도를 보는 일을 제대로 할 사람을 찾아 적재적소에 배치하고 이를 제대로 관리할 능력까지 갖춰야 한다.

이런 종합적인 지식을 갖추는 것은 기본이고 정말 뛰어난 선장이 되려면 바람이 이 정도로 일고 파도가 이 정도로 거셀 때 배를 띄울 것인가 말 것인가, 이를 띄운 후에는 어느 정도 어려움이 닥칠 때 포기할 것인가, 아니면 밀고 나갈 것인가를 결정할 판단력과 이를 실천할 의지가 있어야 한다.


좋은 선장의 조건이 배와 자연, 인간에 대한 종합적인 지식과 미래를 내다보는 혜안과 결단력이라면 국가를 이끌 지도자의 조건도 비슷하다. 선장이 배를 잘못 몰면 피해를 입는 것은 배와 선원, 선장 자신이지만 국가 지도자가 잘못된 결정을 하면 그 피해는 국민 전체에 돌아간다. 제대로 된 지도자를 뽑는 것이 국가의 중대사인 것은 그 때문이다.

국가 지도자는 수많은 결정을 해야 하지만 그 중 가장 중요한 것은 전쟁과 평화에 대한 결정이다. 그가 이에 관해 어떤 결정을 내리느냐에 국민의 생명과 국가의 존립이 직결돼 있기 때문이다. 이 양단에 관한 결정은 신중히 내려져야 하고 일단 내린 후에는 일관성 있게, 끈기 있게 추진되어야 함은 두 말 할 필요도 없다.

오바마가 이와 관련해 1년 내내 두들겨 맞고 있다. 요즘 그를 비판하는 사람은 공화당 의원도 우파 보수 단체도 아니다. 바로 얼마 전까지 밑에서 오바마를 보좌하던 부하들이다. 연초 로버트 게이츠 전 국방장관이 그의 외교 정책을 비판한 데 이어 여름에는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이 그의 외교 정책을 흠잡고 나섰다.

그리고 최근에는 CIA국장과 국방장관을 지낸 레온 파네타가 회고록에서 오바마는 “전쟁을 피하는” 오락가락하는 지도자라고 정면으로 비판했다. 그에 따르면 오바마는 “전투를 피하고 불평을 하느라 기회를 놓치곤 하며 상대방과 맞서 토론하기보다는 침묵하며 자신의 주장을 관철시키기 위해 지지를 모으지도 않는다.” 그는 또 오바마는 “지도자의 열정보다 법대 교수의 논리에 의지하려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이들은 오바마가 이라크에서 서둘러 철군하지 말고 온건파 시리아 반군을 지원하라는 자신들의 충고를 무시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대통령이 현직에 있는데 전직 각료들이 이처럼 일제히 전 보스를 비난하는 책을 낸 것은 극히 이례적인 일이다.

이중에서 가장 아픈 것은 파네타의 비판이다. 게이츠는 아들 부시 시절 임명된 사람으로 공화당과 친분이 있고 힐러리는 차기 대선을 바라보는 후보로 인기가 바닥인 오바마와 거리 두기가 필요하지만 지난 40년 동안 연방 하원의원부터 예산국장, 비서실장, 정보부장, 국방장관을 두루 거친 민주당의 원로인 파네타가 민주당과 오바마를 해칠 의도로 이런 주장을 할리 없기 때문이다.

평화주의자인 오바마가 오랜 전쟁에 지친 미 국민을 이끌고 전쟁을 계속해야 한다고 설득하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 결과는 내란 중인 시리아와 무주공산인 이라크 일대를 무서운 속도로 집어삼킨 IS의 등장이다. 선장도 지도자도 때로는 지친 선원과 국민들을 독려해 가며 험하지만 올바른 길로 가게할 의무가 있다. 지금까지 행적을 보면, 또 인사이더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오바마는 리더로서의 기본적인 소임을 다하지 못했다. “깡패들에 둘러싸인 법대교수”라는 누군가의 평이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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