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진정한 크리스천의 향기

2014-09-12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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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한 사람이 불법체류 미국생활 12년 만에 한국으로 돌아갔다. 수십 년 만에 귀국하는 사람도 많은 세상에 무슨 특별한 일이라고 그의 귀국에 관심을 가지는가... 내가 지난해 여름 응급실에 실려 온 박 씨를 처음 보았을 때 그는 빈사상태였다. 황달이 지나쳐 거의 흙색에 가까운 그의 피부색은 전문가가 아니더라도 단숨에 간에 문제가 있을 것을 추측케 할 수 있었다.

게다가 걸친 셔츠위로 만삭된 산모같이 커다랗게 솟아오른 배와 걷지도 못할 만큼 퉁퉁 부운 두 다리는 그 건강상태의 심각성이 얼마나 심각한지 한눈에 보였다. 입원이 되고나서 계속되는 검사와 치료를 받으며 그의 상태는 조금씩 호전되어 가는 듯 했다. 병원 음식이 입에 맞는 듯 혹은 그동안 식사를 제대로 챙겨 먹지를 못했는지 그의 굉장한 식욕은 검사를 하기 위해 이따금 해야 되는 금식이 오히려 고통스러웠지만 잘 먹는 만큼 놀라운 속도로 회복되어 갔다.

찾아오는 이 하나 없이 거의 무표정한 상태로 온종일 말없이 치료와 검사를 받는 그에게서 알아낸 것은 30중반에 관광 비자로 미국에 온 후 그동안 혼자 살아왔다는 것이다. 50이 내일 모레인 터에 가족과 떨어져 모진 고생을 했을 흔적이 역력한데, 그런 내색보다는 자신이 일류식당 주방장으로 보내던 화려한 이야기를 할 때 그는 기운이 솟는 듯 했다.


그의 병명은 말기 간 경변에 이은 말기 암이었다.

처음 응급실에 들어왔을 때의 형편으로는 살아서 퇴원할 수 있을 까 싶었는데 어쨌든 병원에서는 살려 놓는 것 같다. 어느 정도 회복이 되고 병명이 나오니 일단은 퇴원하여 술, 담배 끊고 의사의 지시를 착실히 따르라는 명령과 함께 퇴원하여 집으로 돌아갔다.

그 후 몇 달이 지난겨울 박 씨는 몇 달 전 보다 훨씬 악화된 상태로 또다시 응급실에 실려 왔다. 그가 머물던 숙소의 주인과 연락이 됐는데 그동안 피운 담배꽁초와 마신 술병이 옷장 안에 산더미같이 쌓여 있어 치우는데 애먹었다고 하며 짐 챙겨서 내놓을 테니 다시 돌아오지 말라고 못을 박는다.

배와 다리의 물이 빠지고 음식을 먹기 시작하자 겉보기에는 또다시 건강을 회복한 듯해 보였다. 12월초에 들어와 그 상태로는 연말을 못 넘길 것이라는 의사의 예견과는 달리 또 다시 위기를 넘긴 듯 해가 바뀌고 1월이 되었다.

연말의 들뜬 분위기는 병원에도 찾아든다. 아무도 찾아오지 않는 그가 안쓰러워 필그림 미션의 책임자 양유환 장로에게 연락을 하니 매일같이 찾아와준다. 환자의 상태가 힘들어 언제 신장이 멈출지 모른다 하여 장례준비까지 계획하시는 이분은 진짜다.

외롭고 힘든 환자가 있을 때 이 분에게 연락하면 정말 크리스천의 향기가 무엇인지 실천으로 보이는 분이다. 이분에게 사랑의 손길을 받은 많은 환자들이 이구동성으로 하는 말이다. 병원에서는 완치가 안 되더라도 회복기에 들어선 환자들은 퇴원시킨다. 그리고 의사의 처방약을 먹도록 한다. 그런데 박 씨는 갈 곳이 없다. 그동안 있던 숙소에서는 이 박 씨 때문에 꽤나 애를 먹었던지 다시 들어오는 것을 거부한다. 병원에서는 돌아갈 곳이 마땅치 않은 이런 중환자를 함부로 퇴원 못시킨다.

돌아갈 집도 맞아줄 가족도 없는데다 신분에 필요한 서류도 없는 이런 환자가 갈 곳은 어디에도 없다. 그런데 양 장로가 한군데를 찾아냈다.


패터슨에 자리한 ‘하나 미션 센터’ 이곳은 한인 목회자 한 분이 오갈 곳 없어 찾아오는 노숙자들에게 숙식을 제공해주는 곳이다. 정확히는 알 수 없지만 몇몇 교회와 개인들의 성금과 김 헨리 목사의 봉사정신으로 많은 노숙자들이 잠자리와 식사를 해결 받고 있다. 이곳에서는 거처가 마련될 때까지 대개 2-3주 정도 머물게 된다. 양 장로는 이곳으로 퇴원한 박 씨가 한국으로 떠날 때까지 머문 6개월 동안 수시로 병원 입원실에 실려 가기도 하고 입원해있는 동안 그의 보호자로서 모든 수발을 들으며 기도와 말씀으로 예수님을 영접하도록 애썼다. 뿐만 아니라 영사관을 찾아가 연락이 끊긴 한국의 박 씨 가족들을 찾아달라고 부탁하여 외무부를 통해 12년 만에 연락이 되도록 하였다. 5살 때 마지막 보고 떠나왔던 딸이 아름답게 틴에이저로 성장한 사진까지 받아보게 된 박 씨는 한국에 가겠다고 조르기 시작하였다.

“지금 건강하지도 않고 비행기 값도 없으면서 어떻게 한국엘 가요?” 찾아간 내가 퉁명스럽게 묻자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박 씨는 방안을 씩씩한 병사처럼 걸어 다니며 떼쓰는 아이처럼 말한다. “이렇게 잘 걸어요. 걸어서라도 가렵니다.”가족에게로 갈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 것인가. 2-3주 만 있을 것이라고 들어간 하나미션센터의 규칙을 어기고 몇 달을 넘긴 박 씨를 아무 말 없이 받아주는 김 목사에게도 미안하고 내 일처럼 쫓아다니는 양 장로에게도 미안하기만한 내게 그를 한국의 가족에게로 보내주는 일만큼 좋은 일은 없을 것이었다.

그런데 박 씨의 가족에게 그의 귀국을 타진하는 양 장로에게 그의 형에게서 답이 왔다. “그래도 사람으로 태어나 살았으니 죽으면 필요한 사람에게 장기를 기증 할 수 있도록 도와 주십시오. 살아생전에 못했으니 죽어서라도 한번쯤은 좋은 일을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미안합니다. 가족들은 그가 한국으로 돌아오는 것을 환영하지 않습니다” 박 씨에게 차마 그 말을 할 수 없었던 양 장로는 그의 성화에 그의 귀국을 서둘러 준비하게 되었다. 교회와 주위 몇 사람의 도움으로 새 옷과 용돈까지 손에 쥐어준 양 장로는 그를 떠나보내는 JFK 공항에서 환히 웃는 그와 사진을 찍어 내게 보내왔다.

“비행기 트랩 안을 걸어 들어가는 발길이 젊은 청년같이 힘찼습니다” 그러나 그의 마음이 밝지만은 않았다. 아무도 반겨주지 않는 고향으로 마음 설레며 돌아가는 박씨. “이제 신경 쓰지 마세요. 그동안 너무 고생하셨습니다”솔직히 말해서 속이 시원해서 한마디 하기는 했지만 내 속도 그다지 편한 것 많은 아니었다. 무엇이 옳은 일인지 알 수도 없거니와 그 좋은 시절 소식 없는 남편 애타게 기다리며 혼자 몸으로 4남매를 키워놓았더니 병든 몸으로 돌아오는 남편을 바라보아야 하는 그 아내의 마음은 어떤 것일까…

또 지난 12년간 어떤 세상을 살아왔길 레 찾아주는 친구 하나 없이 혼자서 사선을 넘나드는 중병을 앓고 있는 것일까. 자신이 뭐관데 양 장로의 귀한 시간과 정성을 당연한 듯이 받는지 생각이나 해 보았을까. 그리고 말없이 기다렸다는 듯 여기저기에서 내미는 도움의 손길들…내가 풀 수 없는 답일 것이다.

며칠 못 살 것이라는 의료진과 장례계획을 세우던 사람들을 놀래키고 분연히 다시 일어선 그가 정말 불사조처럼 소생하여 그동안 가족에게 빚진 세월을 보답하는 새 인생을 살게 되기를 바래본다.

윤 혜영<병원수퍼바이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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