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차이나 머니

2014-08-29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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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휴가철이 끝나가고 있다. 올여름 프랑스 파리는 자존심을 집어던졌다. 수백년간 유럽의 외교언어로 사용될 정도로 자부심을 지녔던 ‘프랑스어 보호정책’을 포기하고 중국인 관광객을 위한 파격적 조건의 관광 비즈니스 문을 활짝 열었다.

로랑 파비위스 프랑스 외무장관은 2014년 1월 27일부터 중국인 관광객은 48시간 안에 비자를 발급한다고 발표했다. 그동안 프랑스 비자를 받는데 10일 이상 걸렸었다. 샹젤리제 거리의 샤넬, 구치매장에서는 중국어 하는 직원이 배치되어 줄지어 선 중국인들을 안내한다. 제1호 루이뷔통 매장에서 현금 박치기로 가방을 두세 개씩 척 척 사는 중국인 모습은 익숙할 정도고 베르사이유궁전 뜰에서 웨딩촬영하는 중국인 신혼부부는 친구들까지 중국에서 대동하고 왔단다.

문제는 중국인들이 파리에 몰리면서 소매치기가 빈발해지자 이번 여름, 프랑스관광청은 프랑스어를 하는 중국인 청원경찰을 부르겠다는 아부성 발언까지 했었다. 결국 이 제안은 무산되었다. 프랑스를 방문하는 중국인관광객은 작년 한해만 120만명이상이었고 1인당 약 5,000유로 금액을 소비했다고 한다.


뉴욕도 중국인들이 좋아하는 관광지다. 배터리팍 북쪽 볼링 그린에 있는 황소 브론즈상은 월스트릿의 상징이다. 뿔과 얼굴, 몸체가 번쩍이는 황색으로 금방이라도 콧김을 쉭쉭 내뿜으며 길가로 뛰쳐나갈 것 같은 이 거대한 황소상이 중국인에게 가장 인기있는 뉴욕 관광코스라고 한다.
20년이상 뉴욕에 살아도 황소상을 본 적이 없다가 올초 뉴욕을 방문한 한국의 친지들과 이곳에 갔다가 희한한 장면을 보았다.
중국인 단체 관광객들은 황소 엉덩이 뒤 항문이 보이는 곳에서 앉아서 사진을 찍고, 서서도 찍었다. 꿈에 나온 ‘똥’ 꿈이 ‘돈’ 꿈이라며, 황소의 거대한 엉덩이를 옆에 놓고 이를 드러내고 웃으며 사진을 찍은 다음 다시 앞으로 가 뿔이 나오는 앞모습과 사진을 찍었다. 작년 가을에는 한 중국인 남성이 이 황소 상의 목 위에 올라타고 사진을 찍자 한 누리꾼이 제보, 중국인 신문에 기사가 나기도 했다.

한때 일본인이, 한국인들은 1987년 해외여행 자유화 이후 너도 나도 해외 나들이에 나서 에펠탑, 개선문, 자유의 여신상, 엠파이어 빌딩이 몸살을 앓던 적이 있었는데 요즘은 중국인들이 열심히 해외나들이에 나서고 있다.

미국 상무부는 지난 6월 미국을 여행한 중국인 관광객의 소비지출이 98억 달러로 1인 평균 9,727달러를 썼다고 한다. 그러니 이 ‘차이나 머니’는 뉴욕에서도 무시못할 존재다. 작년에 시공에 들어간 맨하탄 센트럴 팍 앞 100층짜리 초대형 주상복합건물은 미국측이 땅을 제공하고 중국측이 9,000만 달러를 투자하여 짓고 있다. 이 100층 건물이 돈을 의미한다는 숫자 88층으로 둔갑되었다. 1~12층에 샤핑몰이, 사무실과 아파트가 들어서는 13층부터 1층으로 표시한 것이다.

세계 경제의 리드로 부상 중인 중국은 언제부터 돈에 대한 열망이 이리 뜨거워졌을까. 각국 비즈니스맨들의 생존경쟁이 벌어지는 중국을 무대로 한 조정래 소설 ‘ 정글만리 ‘를 인용해 본다.

‘덩샤오핑이 개혁개방을 주도하며 인민들을 향해 3대 구호, 즉 첫째 검은 고양이든 흰 고양이든 쥐만 잘 잡으면 최고다, 둘째 먼저 부자가 되어라, 셋째 부자가 된다는 것은 영광스러운 일이라고 외쳤다. 그러니 마오저뚱의 공산혁명 이래 몇십년동안 소유욕이 억눌렸던 중국인들은 환호성을 지르며 ‘돈만 쳐다보고 가자’, ‘차라리 목숨을 버릴지언정 돈을 놓치지 말아라’, ‘구걸은 부끄러워도 몸 파는 것은 부끄럽지 않다’며 너도 나도 돈에 혈안이 되었다. ‘

‘세계의 공장’이란 말을 들을 정도로 온갖 제조업에 뛰어들어 험한 일을 해낸 30년 후 중국인들은 돈을 움켜쥐었고 요즘 자본주의 돈맛을 단단히 보고 있는 중이다. 조그만 구멍가게라도 자신의 장사를 해야 돈을 번다며 너도 나도 창업한다고 한다.

왜 중국인들이 황소상을 애호하고 88층을 고집하는 것이 이해되지만 세계 각국이 자국의 꺼져가는 경제에 불을 붙이기 위해서 자존심마저 집어던져야 하는 현실이 안타깝다. 돈은 절대 필요하지만 돈의 노예는 되지 말자고 새삼 다짐해 본다. 인간은 보다 품위 있고 고결한 존재가 아닌가. <민병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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