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책 속에 길이 있다

2014-07-12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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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욱 <객원논설위원>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책은 BC 2,100년경의 고대 이집트에서 파피루스에 쓰여 만들어진 로 알려져 있다. 파피루스란 갈대 과에 속한 식물이름으로 종이 발명 전, 고대 사람들은 여기에 글을 써서 남겼다. 책 이름은 이 책을 발견한 프랑스 이집트 학자의 이름인 Prisse d’Avennes를 따서 명명됐다.

책은 이집트 제5왕조 통치기의 고관인 Path-hotop이란 자가 썼으며 이집트 사람들에게 권고하고 있는 도덕적 가치에 관한 “공명정대하게 행동하고, 이웃과 동포들에게 진실하고, 자애로울 것”의 내용을 담고 있다. 지금은 종이책도 아닌, 전자책(e-book)이 사람들에게 읽히고 있어 시대의 변화를 잘 나타내고 있다.


2002년 두 권의 책을 발간한 적이 있다. 한 권은 시집이며 또 한 권은 수필집이다. 글을 쓰는 선배 시인이 “구슬도 꿰어야 보물이 된다”며 그동안 써 놓은 글들을 책으로 묶어 보라고 해서 실행에 옮긴 것이다. 직업이 글 쓰는 거라 그 후에도 많은 글을 써 와서 아마도 책 몇 권은 묶어도 될 분량이 쌓여 있을 것 같다.

시집 내용은 이민 온 1980년부터 써 온 이국의 삶에 대한 애환, 신과 우주 그리고 일상에 대한 노래와 일부 인간사랑에 관한 것들이 주를 이룬다. 수필은 신문사에서 매주 써 온 칼럼 중에서도 수상에 가까운 내용들을 추려낸 것들이다. 두 권의 책을 만들면서 책을 만들어 남긴다는 것이 얼마나 힘들다는 걸 알았다.

그래도 한 평생 살면서 자신의 족적이라 할, 책을 한 권이라도 남긴다는 것은 얼마나 좋은 일인가. 뉴욕에 살던 박기숙(85)할머니는 얼마 전 <꿈은 늙지 않는다>란 수필집을 한국에서 발간했다. 일본 식민지, 해방, 한국전쟁 등의 역사적 사실과 어린 시절 동네 빨래터, 남편 따라와 살던 이민생활 등등이 담겨있다.

그가 글공부를 시작한 건 79세부터란다. 9순 가까운 고령에도 불구하고 귀한 책을 낸 할머니는 “다섯 남매를 모두 키우고 난 후, 늘그막에서야 내 인생을 돌아보고 정리하는 시간을 갖고 싶어 내가 살아 온 이야기를 담담하게 글로 표현했다”며 “나이는 여든을 넘겼지만 여전히 이루고 싶은 꿈이 아직도 많다”고 한다.

서울에 살 때, 종종 찾아가던 곳이 있었다. 청계천 고서점이다. 그 곳에 가면 왠지 모를 푸근함이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곤 했다. 또 노란 색깔로 바래진 책갈피에서 나는 종이냄새가 그렇게 구수할 수가 없었다. 지금도 그곳에는 국도서점이란 헌책방이 있단다. 1962년 문을 열었으니 52년 역사를 자랑하는 고서점이다.

두 평 남짓한 공간에 3만여 권의 책이 오랜 보물처럼 쌓여져 있는 헌 책방. 청계천 고서점의 터줏대감 역할을 하는 이곳을 20년 동안 찾아가는 단골손님인 최정문씨. 그는 일주일에 한 번씩 이곳을 찾는데 헌 책 속에서 자신을 발견하려는가 보다. 그는 “좋잖아요. 책도 싸고 휴식도 되고, 도심의 오아시스죠”라고 말한다.

고유명사가 한 자도 들어가지 않은 불가사의한 책이 있다. 노자(老子)의 <도덕경(道德經)>이다. 노자는 2,500년 전 중국의 주(周)나라 말기 사람이다. 성은 이(李)씨며 이름은 이(耳), 시호는 담(聃)으로 주나라 수장실(왕성도서실)에 근무하던 도서관 사서였다고 중국의 역사가 사마천은 그의 사기(史記)에서 밝힌다.

도덕경은 5,000언(字)에 81편(도경, 덕경)의 문장이다. 짧은 81편 안에 들어 있는 지혜단지는 캐고 또 캐내어도 끝이 없는 금광과도 같다. 도덕경을 빼고는 동양사상과 동양철학을 논할 순 없다. 중국인에겐 도덕경이, 유대인에겐 토라(모세의 5경)란 책이 있었음이 오늘의 그들을 있게 한 원동력이 되지 않았나 싶다.

전자책도 책이다. 열심히만 보면 된다. 세상 살며 책 한권 내는 것, 귀한 일이다. 박기숙할머니가 85세에 낸 책 <꿈은 늙지 않는다>. 맞다. 죽은 자는 꿈이 없다. 청계천 헌 책방, 가보고 싶은 곳 중 하나다. 노자의 도덕경, 중국의 지혜문서다. 책을 사랑하는 자, 결코 망하지 않는다. 책을 내든 보든, 책 속에 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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