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오늘의 대한민국

2014-04-23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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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주영(주필)

한국은 지난 반세기동안 온 국민이 노력한 결과 세계경제대국 반열 12권에 드는 나라로 성장 발전했다. 박정희 대통령 집권 18년동안 소위 압축성장을 통해 이루어낸 기적의 결과이다. 하지만 이러한 초고속성장 이면에는 어두운 폐해도 생겨났다. 목표달성을 위해, 시간을 아껴 쓰기 위해 탄생한 ‘빨리’빨리‘ 문화이다. 그 결과 황금만능주의 팽배로 고귀한 윤리문화와 인명중시 사상의 실종, 도덕 및 안전 불감증이 사회 전반에 만연되면서 총체적인 부실이 나라전체를 위기로 몰고 있다.

피해가족을 고통과 슬픔으로, 나라를 혼란으로 몰고 간 이번 전남 진도 해상의 세월호 사건은 이를 여실히 증명한다. 승객을 버려두고 먼저 탈출한 선장과 선원들의 무책임한 행보, 관제센터의 초등대처 부실 등은 배안에 있던 근 300명의 인명을 얼마든지 구조할 수 있었던 일촉즉발의 골든타임 30분을 소모해버리는 어이없는 사태를 야기시켰다.


또 구조대책본부의 기능상실, 세월호를 운영해온 회사측의 방만한 경영 등도 사고를 대형참사로 몰고가는 결정적인 요인이 되었다. 그야말로 총체적인 부실이 빚어낸 인재(人災)였다. 이는 피말리는 고통과 슬픔속에 생존자 구조를 애타게 기다리던 피해가족들과 참사현장을 눈물겹게 바라보는 온 국민을 분노로 몰고 있다.

17세 꽃다운 학생들을 죽음으로 내몰고 하루아침에 평온했던 도시를 쑥대밭으로 만들고 주민들의 행복을 빼앗고 생존자들에게 마음의 고통을 안겨준 참상은 모두 부도덕하고 무책임한 어른들이 자행한 결과이다.

이것이 어디 이번 사고뿐일까. 성수대교, 상품백화점 붕괴, 대구지하철 방화 등도 모두 빨리 빨리 문화가 낳은 대형 참사였고 사전예방이나 초등대처도 엉망이었다. 이번 사고로 한국은 지금 온 나라가 뒤흔들리다시피 하고 전 국민이 패닉상태다. 500백 명 정도 탑승한 배 한 척 침몰했는데 온 나라가 이지경이면 더 큰 사고가 나면 어떻게 될지 심히 우려된다.

그런데도 여전히 공직자들은 부적절한 언행으로 피해가족들의 아픔을 가중시키고 있다. 이 와중에 실종자 가족을 등쳐먹는 사기꾼과 사태를 엉뚱하게 몰고 가는 누리꾼도 생겨났다. 3,000여명의 생명을 잃은 9.11테러의 대형참사에서도 전국민과 국가가 하나가 되어 아무런 잡음없이 사태를 해결한 미국과는 너무도 대조적이다.
이번 사고로 한국은 국제적인 망신을 샀으며 대외적인 신뢰도도 크게 추락했다. 세계 주요 언론은 연일 한국의 세월호 참사를 다루며 선장의 무책임한 행보와 정부기능의 무능함을 신랄하게 비판했다. 부끄러운 오늘의 대한민국 자화상이다.

다행인 것은 이 속에서도 어둠을 밝히는 사람들이 있다. 학생들을 대피시키고 구조돼온 단원고 강 모 교감. 그의 마지막 행보는 한국사회의 실종된 양심을 일깨우는 한 가닥 빛이다. 강 교감은 배 안에 남겨진 학생들에 대한 죄책감을 견디지 못하고 목숨을 끊었다. 또 학생들을 끝까지 대피시키다가 죽어서 돌아온 남윤철 교사, 박지영 승무원의 아름다운 행보는 아직도 한국사회의 희망으로 남아 있다.

피해자 및 생존자 가족을 돌보겠다고 나선 5,000명의 자원봉사자들, 억울하게 죽은 영혼을 달래고 피해가족의 아픔과 상처를 위로하기 위해 ‘노란 리번’ 캠페인에 동참한 사람들, 위로편지와 구호품전달로 고통을 함께 나누려는 또래 학생들과 시민들. 이 또한 보이지 않는 대한민국의 희망이고 저력이다.

하지만 칠흙같이 캄캄한 바다 한복판에서 구조를 애타게 기다리며 공포와 절망 속에 울부짖었을 학생들과 무고한 시민들, 자녀나 가족을 잃은 애통함에 몸부림치고 있는 피해가족들의 고통을 조금이라도 헤아린다면, 무고하게 죽은 학생들이 떼지어 실려 나오는 팽목항의 뼈아픈 고통을 더 이상 겪지 않으려면 이제라도 사회전반에 만연된 부조리를 철저하게 재점검해야 한다. 우리는 지금도 생존자들의 소식을 간절히 기다린다.
juyoung@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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