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물맛은 도대체 무슨 맛일까?

2014-02-26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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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 비교할 수 있는 맛이 없다.

수천 년간 철학자들은 물은 무미, 즉 맛 자체가 없다고 주장했다. 또 이러한 물맛이 우리가 맛을 느낄 수 있는 기본 조건이자 미각의 기준점이 된다고 봤다. 혀에게 물맛은 눈이 느끼는 암흑, 귀가 느끼는 침묵과 같다는 것이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이런 글을 남기기도 했다.

“천연상태의 물은 그 자체로 무미해지는 경향을 보인다.”


그도 물은 풍미를 전하기 위한 매개체일 뿐이라 여겼던 셈이다. 그러던 중 과학자들이 순수한 증류수 한 모금도 특정한 미각을 자극할 수 있음을 인지했다. 당시 어떤 학자는 물맛을 톡 쏜다고 설명했고, 어떤 학자는 싱겁다고 표현했다.

1920년대가 되자 물을 섭취하기 전에 맛본 것이 무엇인지에 따라 물맛이 다르게 느껴진다는 연구결과가 다수 도출됐다. 신 음식을 먹고 생수를 마시면 살짝 단맛이 나고, 짠 음식을 먹고 생수를 마시면 미세하게 쓴맛이 난다는 것.

이후 1960~1970년대에는 미국 예일대학 심리학자인 린다 바토슈크 박사는 이른바 ‘물의 뒷맛’을 주제로 다수의 논문을 발표했다. 그녀는 사람이 음식물을 섭취하면 미각세포가 그 음식물의 미각적 자극에 적응하며, 물로 음식물의 맛을 씻어내야 미각이 원래 상태로 복귀한다고 설명했다.

이는 누구라도 당장 체험할 수 있다. 평상시 인간의 혀는 약간 짠맛의 타액에 젖어 있지만 전혀 그 맛을 느끼지 못한다. 이미 타액의 맛에 익숙해져 있는 탓이다. 그러나 물로 타액을 헹궈내면 미각세포가 재활성화되면서 미세한 쓴맛 또는 신맛이 감지된다.

생리학자들의 경우 지난 30여 년간 물맛은 다른 것을 맛본 후에 나타나는 여파로서의 맛이라는 믿음을 견지해왔다. 다만 최근 들어 일부 과학자들이 물은 자체의 맛을 지니고 있으며, 인간도 그 맛을 감지할 수 있다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 2000년대 초부터 인간과 실험용 쥐의 특정 뇌 영역이 물에 반응한다는 연구결과들이 발표되고 있는 것이다.

이와 비슷한 시기에 미국 유타대학 연구진은 포유류의 미각 세포가 아쿠아포린(Aquaporin)이라는 단백질을 생성한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이를 감안하면 세포막을 통해 물을 통과시키는 아쿠아포린의 역할에 힘입어 물이 미각 세포를 직접 자극한다는 추정이 가능하다.

정말 물맛이란 게 존재한다면 인간과 쥐 외에 다른 동물도 물맛을 느끼지 않을까. 확실한 사례는 곤충이다. 곤충이 물맛을 감지한다는 것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이미 초파리가 날개, 다리, 입 주변의 털을 통해 화학물질의 맛을 본다는 게 확인됐다.


<파퓰러 사이언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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