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러시아 이민자

2014-01-30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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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연중 칼럼

▶ 정연중

1900년대 초, 뉴욕 브루클린은 미국의 다른 도시지역과 마찬가지로 인종 용광로의 모습을 갖춰가고 있었다. 그러나 이민자들이 새로운 생활에 빠르게 적응했지만, 대부분이 언어 장벽이나 열악한 환경 속에서 불안정한 노동자로 사회의 최하위 계층의 구성원으로 살아가고 있었다.

그 중 한 가족인 러시아계 모리스 미첨 부부는 사탕과 시가를 파는 가게를 운영하며 근근이 생활을 꾸려가는 중에, 우연히 신문에서 보게 된 그림 하나로 대박을 터뜨린다. 그림은 루즈벨트 대통령이 미시시피 강에서 새끼 곰 사냥을 하지 않겠다고 선언하는 장면을 그린 것이었는데 그림의 하단에 재미있는 기사가 있었다.

번번이 사냥에 실패한 대통령에게 보좌관이 새끼 곰을 잡아와서 총으로 쏘라고 했지만 대통령은 응하지 않았다는 내용을 담은 기사였다. 그리고 이 기사를 본 미첨 부부는 대통령의 동정심에 감명을 받아 곰 인형을 만들어 ‘테디 베어’라는 이름을 붙여 팔았다. 테디는 테오도르 루즈벨트 대통령의 애칭인데, 이 곰인형은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켰고 대통령까지 부부에게 편지를 보내면서 더욱 유명해졌다고 한다.


물론 큰 부자가 된 이들의 이야기는 부부의 14세 아들 조셉을 일인층으로 하는 ‘브루클린 브리지’라는 소설의 소재가 되었다. 소설은 브루클린 브리지 위에 사는 미첨 가족과 다리 아래 사는 빈곤층 러시아 이민자들이 소재이다.

다리 위의 조셉의 가족들은 물려받은 유산을 가지고 부동산 사업을 시작해 두각을 나타내기도 하고, 새로 미국에 도착하는 러시아인들이 미국 땅에서 정착할 수 있도록 돕는 단체에 기부를 하기도 한다.

한편에선 너나 할 것 없이 빵 부스러기를 핥으며 항상 굶주림에 시달리는 아이들과 매일 곰인형을 만드느라 분주한 젊은 여자들이 왕복 차비도 안 되는 저임금에도 매일 행복하게 다리 아래의 집으로 돌아간다는 내용도 있다.

이렇게 소설 속의 이민사의 양지와 음지의 이야기는 지금도 여전히 계속된다. 구글의 창업자인 세르게이 브린은 모스크바에서 태어나 여섯 살 때 부모를 따라 미국에 와 미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 커다란 공헌을 한 이민 1.5세이다. 그는 한 인터뷰에서 부모님이 미국으로 이민 와 성공의 기회를 준 것에 매우 감사한다고 밝혔다.

한편으론 지난해 4월 150명 이상의 사상자를 낸 보스턴 마라톤의 폭탄 테러범이 미국 정착에 실패한 러시아 이민자인, 체첸인 형제였다. 아무튼, 이 사람들도 우리 한인들처럼 미국에 이민 와서는 먼저 이민 온 러시아계 사람들의 주 업종이었던 매니큐어 가게 등에서 일을 하다 대형 식당의 주인이 되기도 하고, 혹은 기계 노동자로 일하다 지금은 내로라 하는 공장을 소유하고 있는 러시아계 사람도 많다.

그리고 이들은 성공의 요인을 자본주의 때문이라고 자주 얘기한다. 공화당이 민주당보다 더 자본주의적 이라고 생각하며 대다수가 공화당을 지지한다고 한다. 그래서 러시아인들은 전통적인 민주당 우세지역인 뉴욕에서 아무리 오래 살았어도 공화당을 더 지지한다. 뉴욕에는 약 35만명의 소련 출신 이민자들이 있는데, 이들은 최근의 선거에서도 오바마를 지지하지 않았고, 기타 러시아계 밀집지역 선거에서는 공화당 출신 후보들이 승리하고 있다.

잠깐 이야기한 것처럼 뉴욕에 거주하는 소련 출신 이민자들이 공화당을 더 지지하는 이유를, 전문가들은 이들이 소비에트 연방 시절 공산주의가 얼마나 나쁜 것인지 경험했기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소비에트 연방 시절 과도한 국가통제에 시달렸던 이들은 민주당은 정부가 국가를 너무 많이 통제하고 있다며 그것이 자신들과 미국에 위험한 것으로 보고 있는 것이다.


러시아 이민자들은 공산주의 아래서 자랐기 때문에 그것이 어떤 것인지 잘 알고 있으며 정부가 너무 많이 개입하는 것은 경제 파괴를 가져온다고 믿고 있다는 것이다. 그들은 소련정부가 사람들로부터 돈을 걷어 가서 모두 낭비했다고 지적한다. 이런 이유로 소련 공산주의 붕괴에 결정적 역할을 한 공화당의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은 소련 출신 이민자들이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라고 한다.

물론 남가주에도 LA 서북쪽의 스튜디오시티나 셔먼옥스 일대 안정된 중산층 지역에 러시아 이민자들이 많이 거주하며 우리 한인의 이웃이 되고 있다. 소련이 붕괴한 이후에도 현재까지 매년 3만명 정도의 러시아 이민자들이 새로이 들어오고 있다. 이렇게 미국은 끊임없이 이민자가 몰려드는 나라이다. 그래서 미국의 정신은 이민의 역사와 함께 한다. 그 중에는 외부인에게 우리의 성공을 보여주는 것도 포함될 것이다. 예를 들어 대부분의 한인 부모들을 비롯한 이민자들은 자녀교육에 열성을 쏟는다. 이들의 마음속엔 떠나 온 고향 사람들에게 우리는 경제적으로 그리고 자식교육에 성공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어 하며 결국은 그런 것들이 우리 한인들이 발전한 원동력이 되었으리라 생각된다.

물론 현재도 미국의 원동력은 새로운 이민자이다. 13억 인구의 중국조차도 이제는 인구감소에 직면하게 되었으며, 한국은 물론이고 유럽이나 일본도 역시 인구감소라는 위협에 직면해 있다.

그러나 미국은 다르다. 이민자가 꾸준히 증가해 2050년이면 지금의 3억 인구가 4억이 될 것이라고 한다. 물론 이 중에는 미국사회가 받아들이고 싶지 않은 이민자도 있겠지만 구글의 공동 창업자 세르게이 브린과 같은 젊은이도 많을 것이다. 이런 인구의 역동성이 미국을 이끄는 가장 큰 힘이다. 그리고 아직도 미국사회는 일찍 이민 와서 자리잡은 사람들과 새로운 이민자들이 물과 기름의 관계처럼 흘러가지만 결국에는 모두에게 ‘꿈’(dream)을 이룰 수 있도록 기회를 주는 이민자의 나라로 지속될 것이다. (213)272-1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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