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그늘진 곳에도 은혜 빛 깃들길”

2013-12-25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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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인 성직자 2인 ‘성탄 메시지’

▶ ■ 김지완 아우구스티누스 <성마태오 한인천주교회 주임신부>

“하느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다”

“모든 사람을 비추는 참 빛”(요한 1, 9)이신 분께서 우리 세상 한가운데로 오셨습니다. 성탄절을 맞아 여러분 모두에게 아기 예수님의 축복과 평화가 풍부히 내리시길 빕니다.

“말씀이 사람이 되시어 우리 가운데 사셨다”(요한 1, 14)는 요한복음서의 증언대로, 하느님께서는 피조물인 우리 인간의 본성과 서로 결합되어, 슬픔과 번뇌, 가난과 고통에 신음하는 사람들과 함께 생활하셨고, 이들에게 기쁨과 희망의 빛을 비추어 주셨습니다. 예수님의 인격 안에서 하느님의 영광을 체험한 사람들은 그분의 은총으로 어둠의 행실을 벗어 버리고, 빛이신 예수님으로 갈아입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 마리아의 태중에서 살이 되고, 마구간에서 포대기에 싸여 구유에 뉘어졌을 때에는, 그 어떤 주요 인사의 방문도 없었습니다. 서둘러 달려온 목자들은 당시 천대 받던 사람들이었으며, 동방박사들 또한 유대인 편에서는 한낱 이방인에 불과했습니다.

세상을 구원할 구세주께서는 그렇게 조용하고 겸손한 모습으로 거의 아무도 모르게 세상에 오셨습니다. 하느님의 이 같은 겸손으로 인해 세상은 더욱 그분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세상이 그분을 통해서 창조되었고, 세상 속에서 그 분이 함께 계셨는데도 말입니다. 그리스도의 강생이 하느님과 피조물의 결합이듯이, 나아가 창조 역시도 하느님과 피조물의 관계로서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삼라만상은 세상에 관여하시는 하느님의 작품이자 선물이며, 하느님께서는 만물 안에서 만물을 통하여 신비스럽게 현존하고 계십니다. 특별히 가장 작은 이들, 굶주리고 헐벗고 병들고 감옥에 갇힌 이들 안에서 지극히 육화적으로 관련되어 계십니다. 이들은 그리스도의 형제들이며, 이들에게 해 주는 것이 바로 그리스도 자신에게 해 드리는 것과도 같습니다(마태 25, 31-46참조).

강생의 신비와 육화의 겸손은 꽃과 바람, 피조물 전체에 연결되어서, 온 세상은 삼위일체 하느님의 현존을 보여주는 한 편의 웅장한 파노라마라고 하겠습니다. 우리의 이기심과 사회의 무관심으로 벼랑 끝까지 내몰린 형제들 안에서 하느님의 현존과 사랑을 깨닫고, 그들 속에 있는 성성(聖性)을 향해 존경을 드릴 수 있는, 그런 은혜로운 성탄절이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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