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늘상 웃는 거울

2013-12-19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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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살아 가면서

▶ 강 신 용

옥살이 27년은 너무나 긴 시간이다. 옥방에서 걸어 나온 것만도 기적이다. 젊음은 감옥에 남겨두고 70대 노인은 밝은 빛을 안고 세상으로 나왔다. 27년은 날수로 만일쯤이고 10,000일은 24만시간이다. 20여년 전 한 남자의 이야기다. 그의 이름은 넬슨 만델라이다.

27년 동안 옥에서 찬 시계도 유명하다. 남아공 만델라 대통령이 한국의 만델라에게 그 시계를 선물했다. 가족에 대한 그리움과 죽음의 공포를 함께 했던 그의 시계는 지금 한국에 있다고 한다. 그들은 한 평의 감방에 걸린 태양시계로 하루의 흐름을 잘 알고 있다. 전과자인 두 대통령은 차례차례 노벨 평화상을 받았다. 다른 한 사람은 한국의 김대중 대통령이다.

어두움은 누구에게나 평등하다. 옥중의 밤이나 저택의 밤이나 세상은 하늘 아래 평등하다. 한낮의 암울한 현실을 지나 별들이 찾아오면 저 높은 하늘 위에 희망을 그렸는지 모르겠다. 향락의 불빛 대신 반짝이는 별빛에 꿈을 새겼는지도 모르겠다. 밤이면 밤마다 역사의 거울 속에 진리의 영혼을 수만번씩 닦고 닦았을 지도 모르겠다.


용서는 하되 잊지는 않는다. 좋은 말은 모래에 새기고 나쁜 말은 돌에 새긴다는 옛 말이 있다. 돌에 새긴 말은 천년을 간다고 독기를 품고 복수를 할 때까지 자손 대대로 가슴에 새겨 잊지 말자고 하는 다짐이다. 죄수는 하늘을 가득 채운 별들을 보면서 별 하나 나 하나, 별 둘 나 둘 별들을 세면서 용서하며 웃었다. 대통령은 350년 동안 동족을 고문하고 무참히 죽인 6,800명의 영혼과 화해하고 사면했다.

인간에게 선(善)한 본성은 희망이다. 맹자는 2,500년 전 인간은 선하게 태어났다는 성선설을 주장했다. 보통 사람들은 작은 일에 화내고 욕하고 악담을 퍼 붓기도 한다. 심성이 나쁜 얼굴에는 여러 개의 훈장이 남는다. 미간에는 내 천(川)자의 성질머리가 개천의 물 흐르듯 깊이깊이 파인다. 어려워도 착한 마음으로 자신을 다스리는 맹자의 자손들은 희망을 가진 관상의 주인공들이다.

많은 뉴스들이 악(惡)한 인간들을 보도한다. ‘순자’는 사람의 본성은 날 때부터 이기적이고 질투하며 미워하기 때문에 그대로 놓아두면 싸운다는 성악설을 주장했다. 지난 11월 저명한 한국 문학 평론가의 세미나가 LA에서 있었다. 만나고 싶은 선배 문인에게 참석할지 전화를 했다. 뜻밖에도 마음의 상처가 깊었다. 자신을 미워하는 싸움꾼들의 속삭임에 많은 아픔을 겪고 있었다. 뉴스가 위선과 본색을 낱낱이 벗겨내듯 악한 본성은 세상에서 하나하나 선한 사람들이 치유해 나간다.

명경지수! 잔잔한 호수의 표면이 마치 거울처럼 비추인다. 10여년 전 캐나다와 접한 몬태나주의 국립 빙하공원을 가는 도중에 세인트 메리 호수를 구경했다. 달력에서나 보던 유명한 호수이다. 명경처럼 호수에 비친 산과 나무들이 너무나 선명하여 마치 산이 호수에 빠진 듯 아름답다. 우리 일행도 세인트 메리 호수에서 나르시스처럼 아름답게 물속에 비치고 있었다. 매일 아침 나르시스의 감성으로 거울에 비친 자아를 돌아보고 편안한 몸단장을 거울에게 물어보며 하루를 연다. 거울 속의 얼굴이 상대를 바라본다. 웃으면 웃는 대로 찡그리면 깨진 대로 대접한다. 모진 비바람은 누구에게나 한 번쯤 지나간다. 번뇌는 바람에 날아가고 고요한 기운이 가슴 속에 남는다. 밤하늘의 별처럼 반짝이는 희망을 가슴에 담는다. 거울 속의 얼굴이 넉넉하게 웃어 준다.

만델라의 모래시계는 95년 동안 돌고 돌았다. 만델라의 거울은 사막의 샛별처럼 늘 웃는 거울이다. Made in USA 거울에 비친 우리의 삶은 아직도 현재 진행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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