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종교인의 현실 참여

2013-12-11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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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동만<전 언론인>

“우리는 (세상의 잘못된 것에 대해) ‘No!’ 라고 말해야 한다.” - ‘복음의 기쁨 (Evangell Gaudium)‘에서 교황 베네딕도 16세가 한 말이다.

가톨릭 전주 교구 박창신 신부의 ‘시국 미사’가 일파만파 큰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정치 사회적으론 종교인의 정치적 발언 내지 행위의 타당성 정당성을 에워싼 논란이 뜨겁고, 학계에선 새삼 정교 분리(statecraft vs.soulcraft)의 역사를 고찰하는 가하면, 가톨릭 내부에선 교리(서) 해석이 분분하다.


이 모두가 근본적인 시각이 다르고, 그 문제 접근 방식이 달라 마치 백가쟁명 양상인데, 나로선 이번 사태를 계기로 종교인, 특히 목회자(신부/목사)의 현실 참여 문제에 대해 평소 생각하던 바를 좀 적어 보고자 한다.

종교(신앙)인으로선 인간 만사 모두가 하나님의 역사하심이다. 인간 생명의 존립을 좌지우지하는 현실적인 정치 경제도 하나님이 역사하시는 과정으로 보아야 한다. 따라서 그 정치 경제 사회 시스템은 하나님의 뜻대로 정의롭고 공평하고 선(善)하게 돌아가도록 해야 한다. 그렇지 못할 때 하나님의 사역자들은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이번 박 신부의 ‘시국 미사’ 파동에 대해 서울 대교구장 염수정 대주교는 이렇게 말한다. “정치 참여는 그리스도인의 의무이다. 이 임무를 주도적으로 행동하는 것은 평신도의 소명으로(가톨릭 교리서는) 강조하고 있다.” “사제들은 먼저 자기 자신으로부터 나와 신자들의 고통과 짐을 질 수 있어야 한다.”

정치 참여 내지 정치 행동이 평신도들에게 소명이라면 사제에게는? 그리고 사제들이 신자들의 고통과 짐을 함께 질 수 있는 현실적인 방법은? 비교인(非敎人)에겐 많은 의문을 자아낸다. 어딘가 앞뒤가 안 맞는 논리적인 모순을 느낀다.

브라질 돔 헬더 까마라 대 주교는 이렇게 말한다. “가난한 사람에게 빵을 주면 그들은 나를 성인이라고 부른다. 그런데 내가 가난한 사람들이 왜 빵이 없느냐고 물으면 그들은 나를 공산주의자라고 한다. 자비를 베푸는 것은 종교 행위이고, ‘가난의 이유’를 묻는 것은 곧 정치 행위가 된다? 참 아이로닉한 이야기다.

교황 베네딕도16세는 또 강론한다. “지상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라(Listen to the voice of the earth)” “지상의 목소리”가 무엇인가? 우리의 삶을 결정하는 정치, 경제, 사회 문제 아닌가. “귀를 기울여라.” 곧 거기에 관심을 갖고 행동라는 말 아닌가.

보수 전통 종교, 많은 보수주의 목회자들은 교회 안에서 개인의 (영혼) 구원만을 설교한다. 인간의 하루하루 생존을 좌지우지하는 정치, 경제 문제는 그들이 간여할 바가 아니란다. 그것들은 정치, 경제하는 사람들의 몫, 정교는 분리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나님의 뜻’을 이 땅에 펼친다는 종교인들, ‘하나님 말씀’을 쫓고 전파하는 성직자들이라면 ‘그 말씀’ ‘그 뜻’이 이 세상에 실현될 수 있도록 심신을 바쳐야 될 줄 안다. 이를 위해 그들은 국가 사회의 부조리, 부정의, 불선(不善)을 누구보다 앞장서 이를 증언하고 규탄해야 한다. 이는 한갓 정치(적) 발언 행위 아닌, 곧 ‘하나님 말씀’의 대변이자 실천이라는 생각이다. 그리고 또 이는 한 생명을 구원하는 소선(小善)을 뛰어넘어 다수를 함께 구원하는 공동선(共同善)의 길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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