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비폭력 투쟁의 전통

2013-09-27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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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현 (목사/ 칼럼니스트)

올해는 링컨대통령의 노예해방선언 150주년, 마틴 루터 킹 주니어 목사의 워싱턴 대행진 50주년을 맞은 해다. 지구 반대편에 있는 서울에서 그에 앞서 44년 전에 일어난 1919년 3월1일 독립운동이 미국에서 1963년에 일어난 흑인민권운동에 영향을 주었다면 지나친 역사의 비약이고 좀 황당무계한 발상일까? 타임머신을 타고 역사의 연결고리를 찾아본다.

20세기는 전반적으로 19세기의 제국주의와 절대 권력에 대항하는 민주주의와 저항운동으로 이어지는 역사발전 단계였다. 그 역사의 첫 장에 일본제국주의에 항거하며 일어난 비폭력 저항운동이 극동에 이름 없는 나라 한국에서 일본제국의 강제통치를 거부하고 일어난 삼일만세운동이다. 이 운동은 같은 입장에 처한 약소국들에게 크게 영향을 끼쳤다.


두 달 후에 중국에서 발생한 신민주주의 운동인 ‘5-4운동’을 고무시켰다. 같은 해 5월4일 중국 베이징대학 학생들 주도로 천안문 광장에서 민중이 일으킨 항일운동이자 반제국주의, 반봉건주의 혁명운동이 5-4운동이다. 문필가들은 중국 각지에서 발행되는 언론지에 조선에서 일어난 항일 만세운동을 소개하며 치하했다. 당시 1차세계대전의 승전국들이 파리강화회담에서 승전국으로 참여한 일본에게 중국 산동성 지배권을 합의해 주었다. 이에 반대하여 전 중국으로 확대된 저항운동이 5-4운동이었으며, 다방면으로 중국의 탈 봉건 민주화에 크게 영향을 미쳤다.

같은 해 4월 중순 인도에서도 간디의 주도하에 크힐라파트 운동, 곧 비폭력, 비협조 운동이 영국의 지배와 독선에 항거하여 전개되기 시작했다. 삼일운동이 발생하자 이 사건은 특파원과 기자에 의해 전 세계에 타전 되었다. 인도의 시성 타고르는 1918년 일본의 동경을 방문했을 때 유명한 ‘아시아의 등불’이라는 시를 한국인에게 전한 바 있다. 간디의 제자 네루 역시 후일 수상이 된 그의 딸에게 보낸 옥중서신 ‘세계사 편력’에서 일본의 침략에 강하게 저항하는 한국인을 높이 평가한다.
킹 목사는 보스턴대학 신학생 시절 하워드대학 총장 연설을 통해서 간디에게 크게 감명을 받았다.

미국노예해방선언 100년이 되었으나 철폐되지 않은 미국의 인종차별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을 간디에게 배우기 위해서 그는 1958년 인도를 방문했다. 그 후 그의 모든 인권운동의 구체적인 행동은 비폭력적 시위와 행진과 연설로 구현된다. 우리의 삼일독립운동과 동일한 방법이다. 이처럼 역사는 단절이 아닌 연속선상에 있는 것이다. 한민족의 평화정신은 뿌리가 매우 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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