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77년만의 우승

2013-07-18 (목)
크게 작게

▶ 강 신 용

한국인의 등산 열기에는 세계도 놀란다. 평일에는 평지를 걷고 주말에는 산을 오른다. 한국인은 남향집에 물과 산이 앞뒤로 있는 지형을 좋아한다. 산은 생명을 품고 대지의 기운을 골고루 나누어준다. 산신령의 정기를 타고 나서인지 LA인근에도 한인 등산객이 넘쳐나 산이 무너질까 걱정이라고 한다.

한국인들이 LPGA를 독점하고 있다. 미국인이 한국인에게 느끼는 불가사의라고 한다. 골프는 혼자서 자기 볼만 치는 철저한 개인운동이다. 개인기에 살고 팀웍이 없는 수퍼맨이 되려는 한국적인 개인문화에 적당한 운동이다. 10여년 전 박세리 선수의 우승과 2013년의 박인비 선수의 우승은 너무나 성숙한 모습으로 비친다. 언론과 인터뷰할 때 유창한 영어와 겸손한 자세가 LPGA를 더욱 빛나게 한다.

7월4일은 축제의 날이다. 1776년 독립전쟁에서 이긴 미국인들은 독립기념을 총 대신 폭죽으로, 대포 대신 불꽃놀이를 한다. 서민들은 낮에 가족끼리 바비큐를 하고 밤하늘에 쏘아 올린 아름다운 불꽃을 감상하는 것이 전통이다.


골프와 테니스는 신사의 운동이다. 많고 많은 운동 중에 정장한 귀족들이 풀밭에서 적당히 품위를 지키면서 놀던 운동이다. 미국에 살면서 한 번쯤 골프에 매료되는 것이 보통의 한국 남자들이다. 우리는 명품 클럽에 명품 복장으로 중무장 했으나 매너는 평민 신분에 머물고 있는 것 같다.

윔블던 효과라는 말이 있다. 과거를 읽고 현재를 인식한 교훈이다. 150년 역사의 영국의 윔블던 테니스 대회는 80년 전에 세계의 프로 선수들에게 최초로 개방되었다. 그 이후 자국 선수들은 안방을 내주고 수십년 간 우승하지 못하는 것을 두고 윔블던 효과라고 불렀다. 문호를 세계에 열고 치열한 경기를 통해 결국 세계 최고의 역사와 명예 그리고 경제적으로 성공할 수 있었다고 한다.

정현 선수가 준우승을 했다. 앞뒤를 자르고 준우승했다니 아무도 모른다. 17세 정현 선수는 주니어 윔블던 대회에서 남자 결승전까지 올라간 것이다. 한국에는 남녀 꿈나무 선수들이 아주 많다. 이곳저곳에서 꿈나무가 자란다. 축구면 브라질로, 골프면 미국으로 무엇이든 어디로든 배우러 간다. 한국 속담에 호랑이를 잡으려면 호랑이 굴로 가라는 말처럼 정상에 도전하는 모습이 아름답다.

조코비치 선수는 윔불던 대회에서 준우승했다. 누구나 테니스를 조금만 알면 조코비치라는 이름을 금방 떠올린다. 작고 힘없는 나라, 세르비아의 희망이며 어린 아이들의 우상이란다. 피자 가게를 운영하는 우리 손님도 세르비아 이민자의 후손이다. 돌이 지난 첫 아들의 장래는 테니스 선수이다. 마치 박세리 키즈라는 말처럼 그리고 10여년 후에 박인비라는 60여년의 역사를 새로 쓴 선수가 탄생할 것처럼 조코비치 선수가 프랑스 오픈을 우승했을 때는 마치 2002년의 붉은 악마 40만 응원단이 세종로 광장을 가득 메웠던 것처럼 베오그라드 광장은 축제의 소용돌이였다고 한다.

77년, 3세대가 흘렀다. 긴긴 세월 우승 한 번 못하던 윔블던 대회에서 드디어 앤디 머레이 영국 선수가 챔피언이 되었다. 개인의 감격보다 TV로 비춰진 영국인 관객들은 더욱 더 열광적이었다. 그들의 함성은 영국 땅을 온통 뒤덮을 만큼 몰아쳤다. 그들의 눈빛은 희망에 불타고 있었다. 수만 명의 함성과 열망 속에 77년의 한이 용광로 속에 녹아드는 모습을 보는 것 같았다.

높이 나는 새가 멀리 본다. 소설 ‘갈매기의 꿈’에 나오는 멋진 말이다. 높이 오르면 내려올 때 위험하다. 원래 삶이란 것이 위험하지만 기꺼이 위험을 감수해야만 한다. 눈을 뜨고 마음을 열어 꿈을 꾸자. 세월이 지나면 윔블던 효과가 나타날 것이다.

77년 동안 손해 본 듯 싶지만 세계 최고로 자리 매김한 것은 시간에 이기는 지혜의 도광양회이다. 꿈과 비전의 삶으로 하루 한 달 한 해를 살아가자.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