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아름다운 착시

2013-07-04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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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 일상, 깨달음

토마스 모어가 쓴 ‘유토피아’를 읽어보면 마음이 흐뭇해 집니다. 어쩌면 인간의 노력으로도 이런 이상향이 만들어질 수도 있을 것 같다는 마음의 착시현상을 경험하기 때문입니다.

원래 소설이라는 것이 마음의 착시를 일으켜서 독자로 하여금 그 이야기 속에 빨려들어가 가상체험을 하도록 장치되어진 문학이라 하겠습니다. 하지만 많은 작품들이 그 시대의 소외된 사람들, 사회적 약자들의 삶을 그리거나, 구조적인 모순을 그려내어 고발함으로써 독자들로 하여금 보다 인간다운 삶을 되찾아 살게 하려는 의도를 갖습니다. 그래서일까요? 대부분의 문학작품들이 사회의 어두운 면, 부정적인 사건을 그려냄으로써 독자들에게 감동과 깨달음은 주겠지만 유쾌하거나 아름다움을 주지는 않게 됩니다. 영화나 음악도 같은 범주에 드는 영역이라 하겠습니다. 대부분의 영화들이 지독한 폭력과 모순을 보여줌으로 오히려 관람자들에게 곤욕과 긴장을 체험하게 합니다. 대중적인 노래도 그렇습니다. ‘사랑은 눈물의 씨앗’이라는 노래만 보더라도 우리에게 사랑에 대한 부정적인 착시현상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하지만 토마스 모어의 ‘유토피아’를 읽으면 사람이 추구해야 할 삶의 방법을 희망적으로, 혹은 긍정적으로 바라보게 하여 줍니다.

토마스 모어가 16세기 초, 영국의 초창기 자본주의의 병폐와 현실에 고민하고 좌절하면서 쓴 소설이지만 그는 그 현실을 초월하는 이상향을 그려냄으로써 그 착시를 통하여 인류의 정신을 높은 곳으로 이끌어 주었습니다. 한번도 존재하거나 실현되지는 않았지만 결코 사라지거나 잊혀질 수 없는 나라를 그는 문학으로 건설하였습니다.


유토피아에서는 우리 현실 세상의 진부한 가치관을 비웃고 뒤집어 버리고 있습니다.

유토피아에서는 사람이 사는 주택을 추첨으로 할당하고 10년마다 바꾸어 줍니다. 금이나 은은 공동식당이나 가정에서 변기나 요강과 같은 불결한 분야의 일상용품을 만드는 데 쓰며, 금관이나 금 목걸이를 하는 사람들은 모두 노예들로서 저급한 신분표시의 장신구들이었습니다. 그 도시의 모든 시민은 동일한 패션과 품질의 옷을 입기 때문에 옷입는 것을 걱정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게다가 시장이라는 신분의 사람이라 할지라도 같은 옷을 입고 다만 한 다발의 곡식단을 들고 다니는 것으로 관직을 표시하였습니다. 결혼을 위하여서는 사회적인 후견인들이 보는 앞에서 신랑 신부가 서로 벗은 몸을 보여주어야 하였습니다. 말하자면 전인적인 인격을 서로에게 공개하고 이해하는 선에서 결혼은 가능하였습니다. 재산이나 지위, 혹은 얼굴만 보거나 혹은 성형수술로 속임수를 부리는 결혼은 멸시되고 허용되지 않았던 것입니다. 더 유쾌한 일은 돈은 필요가 없었고, 모든 일용할 물건은 상점에 요청하면 쓸만큼 제공되었으며, 법률은 간단 명료하였고, 자연스런 해석이 가장 옳은 것으로 간주되었습니다. 더구나 죽음은 슬픈 일이 아니라 기쁘게 받아들였고, 축제처럼 장례식이 진행되었으며, 늙어서 죽기 싫어하는 것을 가장 비천한 성품으로 여겼습니다.

‘유토피아’를 읽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번 쯤 자기 삶의 새로운 가치를 생각해 볼 것입니다. 돈은 평범한 사람들이 먹고 사는 수준만 벌면 더 이상 욕심내지 않는다든가,출세나 명예라는 것이 나와 동시대를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나의 애정을 나눌 수 있는 기회로 그치고 더 이상 악을 쓰며 추구할 것이 아니며, 이 세상에서 내 아내나 남편처럼 사랑스럽고 편안한 반려가 또 어디에 있으랴 깊이 느끼고 감사하고 다행스럽게 사는 것, 이런 것을 생각만해도 마음이 편하고 행복해집니다.

이 지구라는 아름다운 별에 태어나서 길어야 80, 90년을 살다가 가는 그 소중한 시간의 삶을 정말 아름답고, 행복한 착시 속에 살다 갔으면 좋겠습니다.


송 순 태 <카라미션 운영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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