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네 녀석이 부처다

2013-07-02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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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 재 욱 <나란타 불교아카데미 법사>

‘울고 싶을 때/ 울고/ 웃고 싶을 때/ 웃는/ 천진스런 마음이 아름다워요’ (시인 윤향의 ‘천진불’ 전문)근래 온라인 커뮤니티 게시판에는 ‘초등학생들의 기상천외한 답변’이란 제목으로, 아래와 같은 문제집의 질문과 답변들이 게재된 적이 있었다.

질문: 산에서 밥을 지어먹으면 안 되는 까닭을 쓰시오. 답: 거지로 오해 받을까봐.

질문: 친구가 교내 그림그리기 대회에서 상을 받았을 때는 어떤 말을 해주어야 하는지 쓰시오. 답: 꼴에.


질문: 화장실을 이용할 때 문을 열기 전에 해야 할 일은 무엇인지 쓰시오. 답: 자꾸를 연다질문: 불행한 일이 거듭 겹침이란 사자성어는? 괄호 안을 메우시오. 답: 설[사]가[또]이쯤이면 참신한 발상도 엿보이고 애교와 패기가 있는 답변들도 있다하겠다. 다시, 이어지는 질문과 답변이다.

질문: 일상생활에서 설탕과 물이 골고루 섞여서 설탕물이 되는 것과 같은 현상을 이용한 예를 적으시오. 답: 소주와 맥주가 만나서 소맥이 된다. 질문: ‘고치다’의 뜻을 사용하여 짧은 글을 지으시오. 답: 선생님이 이쁜 이유는 성형으로 얼굴을 고쳤기 때문이다.

질문: 남한청년과 북한처녀가 만나서 결혼을 하였습니다. 어떤 일이 생길까요? 답: 뜨거운 밤이 시작된다.

물론 개중에는 애매한 정답도 있긴 하지만, 선생님은 모든 답변을 오답처리 하였다. 특히 ‘선생님이 이쁜 이유는 성형 운운’한 학생의 답변에 대해, 선생님은 표준어가 아님에도 ‘이쁜’이란 단어에는 빨간 색연필로 동그라미를 그려놓고, 답 아래 공백에는 ‘성형 안했음’이라는 지문을 붙여 헷갈리게 해놓고는 오답으로 처리 하였다.

아무튼 이 시대 초등학생들의 거침없고 순발력 넘치는 기상천외한 답변들은 요절복통할 노릇이긴 하나, 어쩐지 그 또래에 기대되는 천진스러움과 상큼한 창의성, 풋풋하고 서툰 미완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가 없어 못내 아쉽고 씁쓸하다.

선가에서는 형식과 예법, 사리를 배워 이른바 철들기 전의 순진무구함을 사람마다 지닌 본래 성품이라고 한다. 따라서 옳고 그름과, 아름답고 추함, 우월과 열등, 애증 등 만 가지 이성적인 간택과 분별심이 생겨나기 이전의 마음과, 웃고 싶을 때 웃고 울고 싶을 때 우는 인위적인 조작이나 거짓이 없는 천연한 경지를, 천진난만한 어린아이의 마음과 흡사하다고 하여 천진불(天眞佛)이라고 부른다.

결국 선가에서의 수행이란 것도 어쩌면 ‘철들기 이전’으로 돌아가기 위한 애면글면한 몸부림이라 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한편 이를 계기로 바보와 바보성자, 어린동자와 깨달은 자의 천진성과 그 차이를 헤아리던 중, 지인을 통해 ‘삼학년‘’(박성우1971- )이란 제목의 시를 접하게 되었다.

‘미숫가루를 실컷 먹고 싶었다/ 부엌 찬장에서 미숫가루통 훔쳐다가/ 동네 우물에 부었다/ 사카린이랑 슈가도 몽땅 털어 넣었다/ 두레박을 들었다 놓았다 하며 미숫가루 저었다/ 뺨따귀를 첨 맞았다’시를 읽으며 슬그머니 웃다가 그림이 점차 뚜렷해지면서, 끝내 아랫배를 움켜쥐어야 했다. 헉! 읽는 이를 무장해제 시켜버리는 녀석은 대책 없는 ‘꼴통’이다. 미워할 수 없는 순정한 물건(?)이다. 그래, 차라리 ‘네 녀석이 부처다’ 다만, 뺨따귀를 맞고 철이 들기 전까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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