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미국의 부자들(2)

2013-06-27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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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연중

옛말에 "사람은 평생 열심히 살면서 세 채의집을 짓는다"는 말이 있다. 왜 세 채 인지는 정확히 모르겠으나 사람은 일생동안 평균적으로세 번 정도 집을 사거나 짓는다는 얘기인 듯 하다. 그래서인지 누구나 성장해서 돈이 조금 모이면 먼저 집장만부터 생각한다. 그런 면에서는부자들도 예외는 아닌가 보다.

1800년대 초반 네덜란드에서 이민 온 한 농부 출신 집안의 코넬리우스 밴더빌트가 해운과항만사업으로 거부가 되고, 그 후 남북전쟁 후에는 철도 사업에 집중적으로 투자해 어마어마한 부를 일궜다는 그 사람 코르넬리우스도 집욕심이 많았다고 한다. 그는 12세 때 학교를 그만두고 연락선에서 심부름꾼으로 일하다가 16세 때부터 조그만 연락선을 사서 사업을 시작했고, 골드러시 때 뉴욕에서 캘리포니아로 가는 증기선을 운영하며 거부가 됐다.

골드러시라는 역사적인 시기가 밴더빌트가의 부의 축적에 행운을 가져다준 것이다. 이런밴더빌트도 집 소유욕이 많아서 인지 26개의저택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 규모가 서민들의집과는 차원이 달랐을 것은 분명하다. 그가 소유했던 저택중 하나가 지금의 뉴욕주 주립공원인 ‘하이드 파크’인데, 원래는 밴더빌트 소유의저택이었다. 그리고 밴더빌트가의 딸인 에밀리밴더빌트가 1886년에 지은’엘름 코트’는 국제연맹이 창설된 1919년 엘’ 름 코트 회담’이 열린 곳이기도 하다.


이렇게 밴더빌트가 남긴 대저택 26채는 후에 대부분 국가에 헌납되어 지금은 관광지로개방이 되어있다. 부자의 집 욕심이 결과적으로는 좋은 유산을 남긴 것이다.

그리고 넘쳐나는 돈을 어디에쓰면 좋은지 알았는지 이 갑부가 남긴 유산 중에는’남부의하버드’라 불리는 명문사학인밴더빌트대학이 있다. 재학생1만2,000명의 테네시주 내슈빌에 있는 이 대학은 1873년코르넬리우스가 그 당시에 거금인100만 달러를 들여세운것으로 평등을 추구하는 미국의 모든 계층 사이의 유대를강화하는 데 공헌 한다는 것이 대학의 설립 취지였다.

밴더빌트 학부에는 문리대, 공대, 블레어 음악대, 피바디 교육대등 네개의 훌륭한 단과대학이 있으며, 학부의 최우수분야로는 공학, 심리학, 교육학, 영어 등이 꼽힌다. 특히 피바디 교육대는 미 전국에서 최고의 교육대학이라는 평을 듣고 있다. 대학원에는 법학, 의학, 간호, 경영, 신학대학원 등이 있다. 노벨 평화상 수상자이며, 미국 제45대 부통령이었던 앨 고어가 이법학대학 출신이다.

한편 2010년 아이티 지진참사 현장에서 카메라와 마이크를 내던진 채, 위험을 무릅쓰고곤경에 처한 소년을 구해내서 전 세계 시청자들의 주목을 받았던 ‘앤더슨 쿠퍼’를 기억하는이들이 많을 것이다. 그는 연봉 1,000만달러의CNN방송의 메인 앵커이고 재난을 당한 곳이면 어디든 달려가는 기자이다. 방송 최고 영예인 ‘에미상’등 많은 상을 수상한실력파이며 물론 영향력을 인정받는 방송인이다. 그런데 그가 바로 밴더빌트 가문의 후손이다. 그의 어머니인 글로리아벤더빌트가 바로 미국최고의갑부인 밴더빌트가의 딸인데,역시 어머니인 글로리아도 재벌 상속녀로서의 편안한 삶을거부하고 청바지 디자이너로 높은 평판을 얻어’글로리아 밴더빌트 디자이너 진’을 설립해 직접디자인한 진바지를 선보였고 캘빈 클라인과 함께 청바지를 생산하기도 했다.

또 그녀는 시인으로도 명성을 얻어사’ 랑은 서서히 오는 것’이란 제목의 시는 세계적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애송되고 있다. 이런 앤더슨 쿠퍼에게도 아픔이 있는데 화려한 이력 뒤의 앤더슨 쿠퍼는 가슴 아픈 개인사를 갖고 있다. 그는 유복하게 태어났지만 비극적인 가족사를 겪어야 했었는데 유명 패션 디자이너이자 화가인어머니는 잦은 결혼과 이혼으로 구설수에 여러번 올랐고 시나리오 작가인 아버지는 그가 아직 어릴 때인 50세에 심장마비로 갑작스럽게세상을 떠났으며 형은 23세에 어머니가 보는앞에서 자살했다고 한다.

이후 그는 재벌의 상속자이자 예일대 출신의엘리트로서 보장된 삶을 뒤로 하고 기자의 길을 선택했다. 앤더슨 쿠퍼는 "죽느냐 사느냐의상황을 겪고 있는 사람들과 죽음으로 인한 상실감을 겪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있는 곳에 가고 싶었다"며 생사를 넘나드는 재난 현장에 뛰어드는 이유를 밝혔다. 이어 "무언가를 크게 잃거나 장애물을 앞에 둔 사람들이 살아남게 되는 것 같다"며 "상실감을 겪은 사람들이 어떻게살아남는지를 배우고 싶었다"고 밝혔다. 비극에굴하지 않고 성공한 사람들의 모델이 된 그는성공한 저널리스트로서 꿈을 찾는 젊은이들을위하여 "성공을 이루는데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이 자신의 심장을 뛰게 하는지 발견해 내는일"이라는 충고도 했다. 주말에 일을 하면서도 ‘일 역시 나 자신의 연장선이라고 느낀다’라고강조하는 일벌레 이다.

그리고 그가 재난 현장만을 찾아다니는 기자가 된 이유가 사람들이 무서워서 잘 가지 않는곳에 가면 경쟁상대가 별로 없어 자신만이 그곳의 이야기를 전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는 이야기도 인상 깊다. 19세기에 윌리엄 밴더빌트는 미국 전역을 관통하는 철길을 내며세상을 변화시켰고 도전정신으로 새로운 부의지도를 만들었다. 그러나 글로리아와 쿠퍼 모자는 선조들이 물려준 거대한 재산에 안주하지 않고 자신만의 새로운 길을 내며 세상을 놀라게 하고 있다. 내조국 대한민국에도 이런 멋진 재벌 후예들이 있는지 찾아보고 다음주 칼럼의 소재로 삼을까 하는데, 쉬운 일이 아닐 듯싶다. ( 21 3 ) 2 7 2 -1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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