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대계 여공들의 슬픈 사연 서려 있어
▶ 1911년 트라이앵글 셔츠사 공장 화재 어린 여공 147명 사망
사악한 사주 무죄석방 전국각지 시위대 모여 노동환경 개선 요구
현재 국가 사적지 지정 보호...NYU 과학센터로도 이용
NYU 밥스트 도서관의 45도 방향 건너편, 워싱턴 플레이스 22번지에 자리한 브라운 빌딩(Brown Building)은 전혀 다른 의미에서 볼만한 건물이다. 단단해 보이는 외관에 더해, 다소 한산한 주위. 이렇게 평범한 모습 속에 특별한 이야기가 숨어있다는 사실조차 전혀 눈치 챌 수 없다. 이전 로어이스트사이드에서 소개했던 패션 산업에 종사한 유대계 여공들의 슬픈 사연이 서려 있는 곳. 그것은 엄숙하다 못해, 숙연하기까지 한 주변 분위기에 의해 한층 더 고조된다.
100여년의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1911년 3월 25일, 이곳에 자리하던 네오 르네상스풍 10층 건물의 8~10층을 쓰던 트라이앵글 셔츠사 공장에서 화재가 발생했다. 당시 이곳에는 13-20세의 유대계 여공들이 일하고 있었다. 많을 때는 500명까지도 동시에 일했다고 전해진다. 하지만 당시 이들의 노동 환경은 열악함 그 자체. 환기조차 제대로 되지 않는 실내 공간, 거기에 노동 시간 중에는 화장실 가는 것조차, 짧은 10분 휴식조차 허락되지 않았다. 이제 막 중고생 정도의 어린 소녀들에게 극도의 노동 스트레스가 가해진 것이다.
훗날 미국 자연주의 문학의 거장이라 추앙받은 스티븐 크레인은 소설 ‘거리의 소녀 매기(Maggie-A Girl of the Street)에서 당시 의류 공장의 열악한 환경을 생생히 그리고 있다. 보워리 일대의 극빈 가정에서 태어난 매기라는 소녀가 여공을 거쳐 매춘부로 전락하는 이야기를 통해 참혹한 현실을 세밀히 묘사했다.
“커프스 제조 공장의 탁한 공기는 소녀를 힘들게 한다. 후텁지근한 연기로 가득한 건물 안에서 소녀는 몸이 시들어 감을 느낀다. 인근 고가 철로가 다닐 때마다 귀를 찢을 듯 한 소음이 울린다. 소음과 악취, 그리고 탁한 공기가 건물 안 가득히 채워진다”
영어도 못하고 이민자라는 차별 대우 속에서도 오로지 생계만을 바라본 채 생활 전선에 뛰어든 이들이지만 사고결과는 참혹했다. 146명이 사망하는, 말 그대로 대참사였다. 하지만 사고 뒤 기준 미달의 노동 환경을 방치한, 그리고 문까지 걸어 잠근 극악무도한 사주 두 명은 무죄 석방되었다. 이 같은 일그러진 판결은 곧 사람들의 분노를 자아냈고, 전국 각지의 시위대가 워싱턴스퀘어 일대에 모여 매일 같이 시위를 벌였다.
그 때까지 이어져온 노동 환경 개선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일거에 분출했고, 그 결과 현재 미 노동법의 원안이 마련될 수 있었다. 무엇보다 이 사건을 계기로 조직된 국제여공조합은 훗날 1960~70년대 우리나라 여공들의 열악한 노동 환경 개선에도 여러모로 기여해 그 의의가 크다. 현재 이곳은 국가 사적지로 지정되어 보호받고 있으며 NYU의 과학센터로도 이용되고 있다.
공장안 물건갖고 도망칠 것 우려한
공장주들 출입문 잠가 사망자 속출
■ 화재 사건 당시의 슬픈 풍경
화염에 휩싸인 건물 안에서 도망갈 길을 잃은 이들은, 소방 구조대와 군중들이 걱정스레 지켜보는 가운데 건물 밖으로 몸을 던졌다. 이윽고 절규하며 떨어지는 여공들의 몸이 거리 가득히 울리자, 열과 압력을 견디지 못한 유리창이 산산조각 나며 그 위를 덮었다.
창문에 선 어떤 남자는 한 여성과 진한 키스를 나눈 뒤 함께 몸을 던졌다는 일화도 남았다. 건물 안에는 가연성 직물이 널려 있었고 최소한의 안전대책조차 갖춰지지 않았다. 또한 당시 소방대의 사다리도 6층까지 밖에 닿지 않아 불과 30분 만에 사망자의 절반이 나왔다. 하지만 진짜 문제는 다른데 있었다. 바로 ‘이들이 공장 안 물건을 갖고 도망칠 것을 우려한’ 공장주들이 화제 뒤 출입문을 잠가 버린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