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신앙에도 유행이 있는지…

2013-06-13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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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 일상, 깨달음

한때, 미국의 그리스도인 사이에서 ‘WWJD’라는 약어가 유행(?)한 적이 있었습니다. 팔찌에 이 글자를 새겨서 끼고 다니기도 하고, 티셔츠에 프린트하여 입고 다니는 젊은이들도 있었고, 자동차 뒷 유리에 이 약어를 붙이고 다니기도 하였습니다.

이 약자의 원문은 ‘What Would Jesus Do’라고 합니다. 우리말로는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하셨을까?’ 쯤으로 번역할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러니까 이런 글자를 붙이고 다니는 뜻은 자기가 무슨 생각이나, 어떤 행동을 해야 할 때, 예수님은 그런 경우에 무슨 생각, 어떤 행동을 하셨을까를 상상해 보고 자신도 예수님처럼 살고 싶다는 표현으로 볼 수 있겠습니다.

사실 그것이 가능한 일이냐 아니냐를 떠나서 예수님처럼 생각하고 행동하고 싶어 하는 그런 바람을 가지는 것은 참 가상한 일로 생각할 수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신앙이란 밖으로 표방하여 떠들고 다닐 일이 아닙니다. 쉽게 생각해서, WWJD를 써 붙이고 다니게 되면, 그런 ‘예수처럼’의 생각이나 행동이 실행될 수 없을 경우나 또한 그 반대행위를 저지르게 될 경우, 스스로의 자괴감은 말할 것도 없고, 타인에게 비난이나 야유를 받을 일만 커지게 됩니다.

‘WWJD’라는 글자를 아무리 써 붙이고 다녀도, 실제로 예수님처럼 생각하고 행동한다는 일은 거의 불가능한 일입니다. 진정으로 신앙하는 사람들은 이미 이런 자기 부족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신앙은 어떤 경우든지 내세우고 떠들 일이 아닌 것입니다.

그런데도 신앙 공동체나 교계에서는 이와 비슷한 일이 자주 유행합니다. 한때는 ‘제자화’ 바람이 불고, 한 때는 ‘성령운동’ 바람이 불고, 또 한 때는 ‘치유집회’ 바람이 불었습니다. 또 ‘성전 짓기’ 바람이 불고, 또 한 때는 ‘구역반’ 바람이 불고, 또 한 때는 ‘말씀암송’ 바람이 불었습니다. 또 한 때는 ‘선교여행’ 바람이 불었고, 또 한국 교계에서는 ‘북한’돕기‘ 바람도 불었습니다.

이런 바람이 불 때는 모든 교회들이 너도나도 여기에 쏠려서 법석을 떨곤 하였습니다. 그러나 지나 놓고 보면, 그 모든 일들이 진정으로 ‘예수처럼’이 되려고 했던 일이라기보다, 한 때를 휩쓸고 지나가는 ‘유행의 바람’으로 끝나는 일이 되곤 하였습니다. 그래서 신앙이란 떠들고 법석을 떨어야 할 일이 아닙니다.

그런데도 신앙공동체는 그 사회와 국가 안에서 굳건히 서서 자기표현을 해야 할 때가 있습니다. 그것은 부패한 사회에서 정직의 역할이고, 전체주의와 기계화 사회에서 인간성을 지키는 역할이고, 향락과 부도덕의 사회에서 절제할 줄 아는 역할이고, 황금만능의 물결에서 가난한 이들을 지키는 역할입니다.

문제는 이러한 역할을 아무 곳에서나 획일적, 한시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그 부조리가 있는 곳마다 필요하고 다양한 모습으로 교회가 끈기 있게 일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가난한 지역의 청소년들이 폭력과 마약으로 빠져드는 곳에서는 교회가 해야 할 일은 ‘말씀 암송’이나, ‘성전 짓기’, 혹은 ‘구역반’ 활동보다는 ‘구제활동’과 ‘청소년 지도’가 바람직하다고 보겠습니다. 혹은 도심의 아파트 지역, 익명성이 강한 지역에서는 ‘구역반’ 활동으로 인간관계의 정신을 일깨우는 교회활동이 바람직하겠습니다.

이렇게 교회가 ‘남 따라 강남 가는’ 자세에서 벗어나 그 지역사회에서 조용히 적시는 이슬비처럼 자기 역할을 감당한다면, 그 교회야말로 진정으로 ‘예수님처럼’ 활동하는 교회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신앙하는 일은 유행을 벗어난 사랑이고, 희생이고, 겸손이어야 한다고 봅니다. 그 중에 제일은 겸손이지 싶습니다. 겸손은 많은 신앙을 이룹니다.


송 순 태 <카라미션 운영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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