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가정에 헌신하라

2013-05-14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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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활인의 신앙

5월은 ‘가정’의 달이다. 우리가 몸담고 있는 현 시대는 물질과 개인주의가 팽배해짐에 따라 삶의 가치관이 바뀌면서 많은 가정에서 신음소리들이 들려오고 있다.

도처에서 별거와 이혼하는 부부들이 늘어나면서 가정이 위기를 맞고 있는 탓이다. 이런 현상은 신앙이 없는 사람들만의 문제가 아니고, 믿는 이들의 가정도 마찬가지다.

물론 아직은 그래도 신앙인과 비신앙인의 차이가 존재하지만 말이다.


가정은 이 세상에 존재하는 ‘사랑’의 꽃밭이다. 사랑하는 가족들이 서로 아끼고, 이해하고, 용서하면서 사랑의 꽃을 피워내기 때문이다. 가정에서는 그래서 꽃향기가 풍겨난다. 우리가 몸담고 있는 세상을 살리는 길은 그래서 가정에 달려 있다. 가정이 살아나면 자연 세상도 살아나기 때문이다. 가정 안에서 참된 신앙의 꽃이 피어나면, 세상은 그만큼 밝아지고 아름다워 진다.

내 가정이 꽃피고 네 가정이 꽃피면 온 세상이 온통 꽃밭이 될 수 있기에 말이다. 진정 각자의 가정은 세상의 꽃밭이다.

가정에는 사랑의 꽃향기가 있고, 이해와 용서와 사랑의 포근함이 함께 있는 살아 있는 꽃밭이다. 가정은 그래서 사회와 교회 공동체의 희망이다. 결코 가정과 교회를 혼동하지 말라.

많은 경우 잘못된 신앙관 때문에 교회에 봉사한다는 일념으로 가정을 등한시하는 경우들이 있다. 가정과 교회의 차이를 세속과 신성함의 차이인양 혼동해서는 큰 코 다친다. 차이가 있다면 가정은 규모면에서 ‘작은’교회라는 차이다. 교회는 작은 교회인 가정 하나하나가 모여 이루어진 더 큰 공동체이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가정에 충실할수록 교회에 충실한자가 된다는 말이다. 다시 말해 교회에 가서 제단 앞에 무릎 꿇는 마음으로 가정의 식탁에서 감사드릴 줄 알아야 참된 신앙인이 된다는 말이다.

일요일에 교회에 가서 한두 시간 미사드릴 때만 하느님과 함께 하는 것이 아니다. 가정에서 남편과 아내, 부모와 자녀 간에 ‘함께’하는 평범한 매 순간 순간 안에서도 하느님이 함께하심을 체험해야 비로소 신앙인이 된다는 말이다. 왜냐하면 하느님은 우리와 항상 ‘함께’ 하시기 때문이다.

교회에 가서 봉사하는 것으로 가정에 소홀한 행위를 정당화할 수 없다. 본래가 작은 교회에 충실하지 못하면 결코 큰 교회에도 충실할 수 없기 때문이다.

주님께서 ‘네가 작은 일에 충성을 다했으니, 너에게 더 큰일을 맡기겠다’ 하신 말씀을 묵상하면 그 뜻이 분명해진다. 이 순서를 망각하면 그래서 본인뿐 아니라 가족과 공동체 모두에게 아픔과 고통이 따른다. 하느님 뜻이 아니라는 증거다. 교회의 봉사는 가정 안에서 넘쳐나는 삶의 풍성한 사랑의 힘이 이웃에 전해지는 과정이다.


이럴 때 봉사자는 교회에 와서 설쳐(?)대지 않고, 묵묵히 이웃을 섬김으로 기쁨을 맛본다. 자연 자신도 행복하고 가족에게도, 공동체에게도 상처를 주지 않고 모두에게 축복을 가져다 줄 수 있다는 말이다.

구약의 성경을 보면, 아브라함, 이사악, 야곱 등 한 가정의 아버지들은 가정의 ‘제사장’ 역할에 충실했다. 가족을 이끌고 하느님을 섬기는 일에 충실했고, 자녀들에게 축복을 기도해 주었다. 그렇다고 가정에 충실해야 한다는 말이 교회 공동체의 봉사에 등한해도 된다는 말은 결코 아니다. 오히려 그 정반대다. 이유는 ‘고인물’은 썩기 때문이다. 이웃에 대한 봉사와 섬김이 없는 가정의 삶은 마치 학교에서 공부는 잘하면서도 사회에 나와 적응을 못하는 절름발이 삶과 같다고나 할까. 알고보면 건강한 가정의 삶은 교회와 사회를 아름답게 성장시키는 자양분이기에 진정 가정은 ‘작은 교회’일 수밖에 없는 것 아닐까.


김재동
<가톨릭 종신부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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