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나는 잠잔다, 고로 살아있다

2013-04-25 (목)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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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가설에 불과해
고로 잠정적일 뿐이니까
잠을 자야 한다
천상열차분야지도로 가려고
호시탐탐 노린다 잠잘 기회만을

틈 안 나도 자고 눈뜨고도 잔다
살아있으려면 꿈꾸어야 하니까

신이야말로 시의 꿈인데도
받침 하나 모자라서 신이 못되니까
니은(ㄴ) 받침 찾아 천상열차분야지도로 가느라고
걸으며 자고 타고 가며 잔다
말에서 말씀으로 가설에서 진리로 순간에서 불멸로
가는, 지름길은 잠자는 것뿐이라서.


-유안진(1941-) ‘나는 잠잔다, 고로 살아있다’ 전문

가설이 아닌 진리를 찾기 위해 의식 너머의 세계를 탐닉하는 시인의 모습이 재미있게 그려져 있다. 잠은 그 질량으로 하여 꿈보다 일상적이고 육체적이다. 그래서 꿈을 노래하는 시보다 잠을 노래하는 시는 인간적이다. 잠이 지름길이라지만 잠 속에서 시인이 천상열차분야지도를 제대로 찾아 읽어낼지는 의문이다. 신이 된 시인은 아직 한 명도 없었으니 잠은 잠에 그칠 것이 분명하나 시인은 밤낮없이 잠 속을 헤맨다, 저 불멸의 진리 ‘ㄴ’을 찾아서.

임혜신<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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