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태평 모드의 한국

2013-04-23 (화)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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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에 강도가 들었다. 권총을 빼어들고 소리를 질렀다. “Freeze!”그러나 행원들도, 고객들도 별 반응이 없다. 아니, 오히려 눈을 들고 똑바로 강도를 쳐다본다. 강도는 재차 소리를 질렀다. 그러나 반응이 없기는 마찬가지다. 은행 안의 사람들은 미동도 않은 채 강도를 바라만 보고 있다.

그 반응에 강도는 진땀을 흘렸다. 다시 소리를 지르다가 결국은 제풀에 달아났다. 자못 태연자약하기까지 한(?) 행원들의 태도에 겁을 먹고 줄행랑을 노은 것이다. 그 정도로 태연할 때는 뭔가 준비가 있겠지 하는 지레짐작과 함께.

한인 타운 초창기 때 있었던 해프닝으로 전해지는 이야기다. 총기문화에 대해 전혀 친숙치 못하다. 100% 불감증세를 보인다고 할 정도로. 거기다가 영어는 불통이다. 그 결과 빚어진 해프닝이라는 거다.


전쟁이 일어나는 곳에는 반드시 나타난다. 그래서 ‘전쟁 개시자’란 별명이 붙어 있다. NBC방송의 종군기자 리처드 앵겔을 두고 하는 말이다.

그가 한국을 찾아왔다. 지난3월31의 일이다. 그가 서울에 입성하자 “정말 전쟁이 있는 것 아니나”며 일부의 술렁거림이 있었다. 그러나 전반적으로는 태평 모드였다.

김정은이 매일 같이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대도 골프장은 여전히 만원이었다고 한다. 사람들은 류현진에만 열광한다. 그리고 주말이면 명품 등산복차림을 하고 너도나도 산행에 나선다.

그 ‘전쟁 개시자’ 앵겔이 결국 한국을 떠났다. 비무장지대(DMZ)와 임전태세의 군부대를 취재하는 등 노력에 그치고 전쟁의 발발 보도는 하지 못한 채 취재현장을 떠나게 된 것이다.

그는 이런 말을 남겼다고 한다. “고난(전쟁위협)에 대응하는 한국인들의 단호함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 동요하지 않는 한국인들이 참 대단하다는 이야기다.

북한의 협박이 사그라지는 기미다. 그러니 한국인들의 태평 모드가 옳았음이 어느 정도 입증이 된 셈이다.

그 태평 모드의 한 구석에서 그러나 뭔가 불안요소가 보인다면 지나친 말일까.


보이지 않는 곳에서 위험은 더 커지고 있다. 핵 소형화에 계속 박차를 가하고 있는 북한이 머지않아 전선에 수 십 기의 핵미사일을 실전 배치하는 날이면 세상은 완전히 달라진다.

그러나 정작 대한민국은 속수무책에 안이한 대응으로 일관하고 있다. 그저 미국을, 중국을 바라보고만 있다. 그리고 ‘신뢰 프로세스’라는 정책만 만지작거리고 있다.

비핵화 이전에라도 북을 지원하겠다는 거다. 무슨 소리인지 애매하기 짝이 없다. 오죽하면 비둘기파로 알려진 존 케리 미 국무장관도 그 정책의 현실성에 의문을 표시하고 나섰을까.

태평스럽기만 한 한국. ‘툭하면 짖어대는 미친 개’의 오랜 학습효과 때문인가, 아니면 중증의 안보불감증 때문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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