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분서

2013-04-09 (화)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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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레히트가 [분서]에서 고민했듯이
어느 독재 정권이 위험한 책을 수거해 불사를 때
나의 시집이 들어 있을까?
분서 목록에 나의 시집이 빠진 것을 발견하고
어서 태워달라고
불같이 항의할 수 있을까?
나는 시를 진실하게 썼다고 주장할 테지만
노동자의 길을 철저히 걷지 못했기에
시집은 불태워지지 않을 것이다
그래도 시 쓰기를 그만둘 수 없는 것은
반성해서라거나
희망이 보여서가 아니라
잊을 수 없는 순간을 품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야적장에서 쓰러졌을 때
불꽃을 떠올리지 않았던가

맹문재( 1963-) ‘분서’ 전문

어떤 이는 잘 팔릴 책을 쓰고 싶어 하고 어떤 이는 분서가 될 책을 쓰고 싶어 한다. 또 누군가는 분서가 될 책을 쓰고 싶었으나 그러지 못했음을 후회한다. 문학이 정의와 행동을 고민하던 시대는 갔다. 그런데 분서가 될 만한 시를 쓰고 싶던 시인은 왜 분서가 되지 않을 시를 계속 시를 쓰는 것일까. 그것은 기억 속의 불꽃 때문이란다. 정의를 위해 청춘을 바치던 저 순수하고 뜨거웠던 영혼의 불꽃 때문에.

임혜신<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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