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사랑의 지옥

2013-04-04 (목)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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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없이 호박꽃 속으로 들어간 꿀벌 한 마리
나는 짓궂게 호박꽃을 오므려 입구를 닫아버린다
꿀의 주막이 금세 환멸의 지옥으로 뒤바뀌었는가
노란 꽃잎의 진동이 그 잉잉거림이
내 손끝을 타고 올라와 가슴을 친다
그대여, 내 사랑이란 그런 것이다
나가지도 더는 들어가지도 못하는 사랑
이 지독한 마음의 잉잉거림
난 지금 그대 황홀의 캄캄한 감옥에 갇혀 운다

유하(1963- ) ‘사랑의 지옥’ 전문

꿀의 주막으로 날아든 꿀벌 한 마리 짓궂은 시인의 장난에 꽃 속에 갇혀버린다. 무섭게 잉잉거리는 것도 잠시. 황홀의 지옥에서 그만 죽어버릴 것 같다. 사랑은 때로 이렇게 죽도록 아름답고 고통스럽다. 그래서 그것을 운명이라 부르기도 한다. 언젠가는 짓궂은 신 같은 시인이 다시 찾아와 갇힌 벌을 놓아 줄 것이다. 그러니 울어라, 사랑에 갇혀버린 자여. 사랑의 상처만큼 아프고 허허롭고 고요한, 사랑의 끝이 올 때까지.

임혜신<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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