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아줌마, 아내

2013-04-02 (화) 12:00:00
크게 작게
나 혼자 심심할 것 같다고
병실 바닥에 신문지를 펼쳐놓고
한 봉다리 마늘을 가지고 와선
TV를 보며 마늘을 까는 여자,
배울 만큼 배웠다는 여자가
선생까지 한다는 여자가
미간을 찌푸리고 나가는 간호사는 아랑곳하지 않고
뭐, 어때 하면서 마늘을 깐다
산중에 곰이 제 배설물 냄새로 제 영역을 표시하듯이
그 역한 마늘 냄새는
내 환부에 새겨 넣는 영역표시 같아서
저 곰 같은 여자의 냄새는
그 어떤 약보다
그 무슨 항생제보다
독하고 또 용할 것도 같아서
제 곁에 내 곁에 백 년 동안은
아무도, 암껏도 얼씬도 못할 것만 같았다

복효근 (1962- ) ‘아줌마, 아내’ 전문

혼자 누워있는 남편이 심심할까 봐 병실을 찾아와 마늘을 까고 있는 여자. 꽃도 아니고 음악도 아니고 조근조근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도 아니고 다짜고짜 자리를 펴고 마늘을 까는 배울 만큼 배웠다는 여자. 그런 여자를 아내도 둔 남자는 든든하다. 저 역한 마늘 냄새의 튼튼한 사랑으로 환부에 ‘병마 접근금지’ 금줄을 쳐 주니 한 백 년 아무것도 얼씬 못할 터. 약보다 항생제보다 강한 것이 아줌마요, 아내란다

임혜신<시인>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