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웰빙과 웰다잉

2013-03-30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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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희(교육가/수필가)

약 5, 6년전 쯤일 거라고 생각된다. 갑자기 웰빙(well being)이란 말이 메스컴에 등장하더니, 지금까지 웰빙은 극히 매력적인 화두로서 계속 우리의 마음을 설레이게 하고 있다.

건강하고 만족한 안락한 삶, 행복과 번영의 삶인 웰빙(well being)의 바람은 우리가 입는 옷에서부터, 먹는 음식에도, 잠자는데도, 유행하였으며 헬스장이나 스파에서 건강한 몸을 가꾸는데 까지 마다하지 않았다.


요즈음은 웰다잉(well dying)이라는 말이 갑자기 뜨게 되었는데 나이가 먹을 만큼 먹은 사람으로, 자꾸 고령화 되어가는 이 사회의 일원으로서 이 말 만큼 나의 마음을 사로잡는 단어가 없다.

웰다잉이란 인간의 근엄을 유지하며 남겨진 사람들에게 죄책감을 느끼지 않고 고통이 최소화된 죽음, 준비된 죽음, 편안한 죽음을 맞이하는 것 아름답고 품위있게 잘 죽는 것을 말한다. 그런데 잘 죽는다는 이 웰다잉이 잘 산다는 웰빙과 아주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것으로, ‘웰다잉’이 ‘웰빙’의 완성이라는 것이다. 인생을 잘 살지 못한 사람이 잘 죽을 수 없기 때문일 것이다.

죽음에 대해서 장자(莊子)는 ‘죽음은 고향으로 돌아가는 것으로 두려운 것도 싫어할 것도 없다’고 하였고 공자(孔子)는 논어 이인 편에서 ‘아침에 도를 듣고 깨달으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朝聞道?可死矣 )고 하였다.몇년 전에 선종한 김수환 추기경은 평소 존엄사를 긍정적으로 인정하다가 병세가 약화되기 시작한 2008년 말 부터 인공 호흡기 같은 기계적 치료에 의한 무의미한 생명 연장을 거부해 왔다.

요즈음 말기 환자의 연명치료 기술 발달로 뇌사에 가까운 중환자들이 자신의 의사와 상관없이 무의미한 치료를 받으며 죽음의 고통이 연장되고 있는 경우를 많이 보곤 한다. 무조건적인 생명의 연장이 좋은 의료라는 견해는 바꾸어져야 한다.

중환자실에서 감염 우려를 이유로 가족과 격리된 채, 기계에 의지하며 무의미한 연명을 하다가 혼자서 쓸쓸히 죽는 것처럼 비참한 일은 없을 것이다. 하늘의 명대로 살다가 가족이 지켜보는 가운데 집에서 편안히 숨을 거두는 것이 인생의 오복중에 하나라고 한다. 이쯤에서 기독교인으로서 기독교에서 말하는 웰빙과 웰다잉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강림하실 때까지 영과 혼과 몸이 흠 없이 하나님의 뜻대로 거룩하게 유지 되는 삶’’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면서 하나님의 영광을 찬양하는 삶’이 바로 웰빙이며 ‘온전히 구원을 얻기 위해서 살아있는 동안에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영원한 천국으로 돌아가는 것’이 웰다잉이다.
그러니까 죽음이라는 것이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인 것이다. 기쁨으로 죽을 수 있는 것, 부디 이러한 죽음 웰다잉을 나에게 허락해 주시라고 늘 기도 드릴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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