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김종훈의 좌절

2013-03-05 (화)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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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영실은 천민(賤民)출신으로 알려져 있다. 아버지는 중국인이었고 어머니는 동래현의 기생이었던 것으로 ‘세종실록’은 전한다.

신분사회였던 조선조에서 천민은 아예 인간이 아니었다. 그 같은 천민출신이었지만 세종은 그의 기술을 아끼어 발탁한다. 중국에 보내어 기술교육을 시켰고 그에 보답하듯이 장영실은 천문기기를 제작한다.

그 공로로 면천되고 세종의 배려 하에 수력에 의해 자동으로 작동되는 자격루, 옥루 등 각종 천문과학기기는 물론 당시로는 최첨단인 금속활자 주조에도 참여한다. 장영실은 결국 정3품 벼슬에까지 오른다.


말이 정3품이지, 정3품이면 당상관으로, 양반 중에 양반이다. 신분사회에서 외국 계에다가 천민출신인 그가 그 같은 품계에 올랐으니 파격도 보통 파격이 아니다.

‘세종이라면 어떻게 했을까’-.

‘아메리칸 드림’의 아이콘이다. 중학교 2학년 때 부모를 따라 이민을 왔다. 가정불화, 빈곤, 미국 사회의 보이지 않는 장벽 등을 극복하고 벤처기업을 일으켜 40도 안된 나이에 미국 내 400대 부자 반열에 올랐다.

그 ‘벤처 신화’의 주인공 김종훈씨가 박근혜 대통령 정부의 신(新)경제를 이끌어갈 핵심 부처인 미래창조과학부 장관으로 지명되면서 나온 질문이다.

‘미 CIA의 앞잡이다’ ‘충성심이 의심스럽다’ ‘도대체 두 개의 조국이 가능한 것인가’-. 이런 저런 이유 등으로 야권으로부터 반대 주장이 줄곧 제기됐다.

반대 정도가 아니다. 정부조직개편법안 자체가 볼모로 잡혀 박근혜 정부는 장관이 없는 기형정부로 출발하게 된 것이다. 그 난맥상을 지켜보다가 김종훈씨는 마침내 장관직을 사퇴했다.

그 사퇴 성명에는 구절구절 통분함, 실망감 등이 묻어 있다. ‘나름 미국에서의 모든 것을 포기하고 낳아준 조국을 위해 헌신하려 했다. 그런데…’하는.


무엇이 그를 좌절시켰나. ‘배타성 민족주의’가 아닐까. 그의 장관임용에 대한 반대가 비등하자 워싱턴포스트지도 바로 이 점을 지적했다. ‘민족주의적인 무조건 반대’가 문제라고.

디아스포라 인재를 활용한다. 이는 세계적인 추세다. 영국정부가 캐나다 출신인 마크 카니를 중앙은행인 뱅크 오브 잉글랜드의 총재로 기용한 것이 그 한 예다.

수백만 인구에 불과한 이스라엘이 강소국이 될 수 있었던 것은 해외의 유대인 인재를 과감히 기용했기 때문이다. 인도가 오랜 잠에서 깨어나 경제개발에 박차를 가하게 된 것도 마찬가지다.

김종훈씨의 좌절은 이런 면에서 세계화의 역행이다. 200만 미주 한인은 물론 700여만 한인 디아스포라의 마음에 상처로 남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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