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에게
2013-02-28 (목) 12:00:00
독자여, 나는 시인으로 여러분의 앞에 보이는 것을 부끄러워합니다.
여러분이 나의 시를 읽을 때에. 나는 슬퍼하고 스스로 슬퍼할 줄을 압니다.
나는 나의 시를 독자의 자손에게까지 읽히고 싶은 마음은 없습니다.
그때에는 나의 시를 읽는 것이 늦은 봄의 꽃수풀에 앉아서, 마른 국화를
비벼서 코에 대는 것과 같을른지 모르것습니다.
밤은 얼마나 되었는지 모르겄습니다.
설악산의 무거운 그림자는 엷어갑니다.
새벽종을 기다리면서 붓을 던집니다.
한용운(1879-1944)‘독자에게‘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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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의 시인이며 승려이며 독립 운동가였던 만해의 시를 읽는다. 험난한 근대사 속의 가장 아름다운 지식인이며 행동가였던 그는 안타깝게도 조국의 광복을 보지 못하고 타계했다. 그래서일까 시집 [님의 침묵]의 뒤에 실린 이 글은 더욱 아련한 슬픔을 전한다. 조국을 되찾고 나면 그의 시들은 읽히지 않아도 진정 좋으리란 생각을 했던 것일까. 아직은 새벽에 이르지 않은 시간, 종소리를 기다리며 붓을 놓는 님, 뜨거운 조국에의 사랑과 광복에의 염원이 여명 속을 슬프고도 당당하게 번져가고 있다.
임혜신<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