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생명줄
2013-02-13 (수) 12:00:00
1969년 27살의 나이에 쿠데타로 집권한 무아마르 카다피는 미국에게는 골칫거리였다. 북아프리카 반미주의의 기수를 자처하며 소련과 가까이 지내고 사사건건 미국에 이익에 반하는 짓만 골라했기 때문이다. 그를 제거하려는 계획이 끊이지 않았던 것도 그 때문이다.
이를 잘 알고 있던 카다피는 집권하자마자 다음해인 1970년부터 핵 개발에 들어갔다. 핵무기를 갖고 있어야 미국에게 무시당하지 않고 권력을 유지할 수 있다는 판단에서였다. 처음에는 파키스탄에 접근, 줄피카르 부토 총리로부터 협조 약속을 받았으나 그가 쿠데타로 축출되고 사형에까지 처해지면서 무위로 끝났다.
파키스탄과의 협력이 여의치 않자 그 다음 파키스탄의 적국인 인도와 가까이 지내며 핵무기 개발에 도움을 받으려 했으나 이 또한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 수준을 넘지 못했다. 1979년에는 독자적으로 농축 우라늄 작업을 추진했으나 실패했고 1982년에는 벨기에로부터 우라늄 제조 공장을 사려다 실패했다.
2000년대 들어서도 핵무기를 갖겠다는 리비아의 노력은 계속됐으나 결국 실패로 끝났다. 근본적으로 기술력의 한계 때문이었다. 거기다 2001년 집권한 부시 행정부는 리비아가 스스로 이를 포기하지 않으면 무력으로 핵시설을 파괴하겠다고 협박했다. 오랜 실패에다 부시 행정부의 엄포에 겁을 먹은 그는 2003년 핵 포기를 선언하고 만다.
리비아에서 재미를 본 부시는 북한에 대해 ‘핵무기의 리비아식 해법’을 택할 것을 촉구했으나 북한은 마이동풍으로 일관했다. 북한은 지금 그 때 말 안 듣기를 참 잘했다고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핵을 포기한 카다피가 2011년 어떻게 몰락했는가를 똑똑히 봤기 때문이다. 카다피한테 핵이 있었다면 반군이 들고 일어났을 때 서방이 과연 이들을 지원할 수 있었을까. 아마도 못했을 것이다.
북한은 12일 예상대로 3차 핵실험을 강행했다. 핵폭탄의 규모를 놓고 이런저런 이야기가 나오고 있으나 북한이 추구하는 것은 미사일에 탑재할 수 있는 소형 핵탄두 개발이며 그를 향해 한 발짝 한 발짝 가고 있는 것만은 분명하다. 국제 사회는 이를 좌시하지 않겠다며 선제 타격부터 경제제재 강화까지 여러 방안을 내놓고 있으나 별효과는 없을 것으로 봐도 된다.
북한은 지난 수십 년간 온갖 제재에도 불구하고 핵무기를 줄기차게 개발해왔고 이를 중단할 의사는 조금도 없다. 북한 뒤에 중국이 있는 한 국제 사회가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없다. 중국은 완충지대로 북한의 존재를 필요로 하고 있으며 어떤 일이 있어도 북한 정권의 붕괴를 팔짱만 끼고 바라보지는 않을 것이다.
북한 정권이 존립을 보장받고 큰 소리 치며 남북 화해라는 이름으로 원조를 뜯어낼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 핵무기다. 이를 스스로 포기한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렵다. 이제는 핵무장한 북한에 남한은 어떻게 대처할 것인지를 놓고 토론하는 것이 순서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