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아직도 전기를 사용하지 않는 나의 지구에서의 차와 담배와 고독사용법

2013-02-12 (화)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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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를 마시는 것은 영혼을 흡수하는 일 그리고 담배를 피우는 것은 영혼을 먼 곳으로 보내는 일

나는 초원에서 하루 종일 일을 하고 저녁이면 말을 타고 나의 게르로 돌아오네 영혼은 차를 마시면서 시작되는 일, 저녁이면 나는 차를 마시며 내 영혼에 관한 일을 하네

그대에 관한 일, 밤하늘에 떠오르는 초저녁별에 관한 일, 바람이 부는 방향과 공기가 머금고 있는 습도에 관한 일
나의 게르에는 천창이 있고 천창을 통해 나는 광대한 밤하늘을 독서 하네 나의 마구간에는 말들이 살찌는 계절이 당도해있고 나는 담배를 피우며 나의 천사들을 그 계절의 가장 깊은 곳으로 흘려보내네


중략
오늘은 하루 종일 열심히 일을 했고 나는 차를 마시고 담배를 피우며 나의 게르에서 이렇게 하루를 마감하노니

고독이여, 그럼 이만 총총 밤하늘엔 쏟아질 듯 별들이 총총

박 정대 (1965- )
‘아직도 전기를 사용하지 않는 나의 지구에서의 차와 담배와 고독사용법’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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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은 휴식과 재생의 시간이다. 고단한 하루의 일과를 끝내고 시인은 한 잔의 차와 한 모금 담배 연기를 뿜으며 저 먼 몽골 어디쯤 게르에 사는 유목민이 된다. 시원이 살아 숨 쉬는 초원에서 그는 빛나는 천체를 맞이한다. 그때 영혼이 깨어나고 억압되었던 이드(id) 또한 꽃처럼 피어난다. 지치도록 일한 자에게 오는 휴식의 시간, 달콤한 잠이 곤한 고독처럼 밀려오는 지극히 개인적이며 또한 우주적인 치유의 시간이다.

임혜신<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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