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겨울 숲에서

2013-01-29 (화)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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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나무 자작나무 마른 잎사귀를 밟으며
첫눈이 내립니다.
첫눈이 내리는 날은
왠지 그대가 올 것 같아
나는 겨울 숲에 한 그루 나무로 서서
그대를 기다립니다
그대를 알고부터
나는 기다리는 일이 즐거워졌습니다
이 계절에서 저 계절을 기다리는
헐벗은 나무들도 모두
그래서 사랑에 빠진 것이겠지요
눈이 쌓일수록
가지고 있던 많은 것을
송두리째 버리는 숲을 보며
그대를 사랑하는 동안
내 마음속 헛된 욕심이며
보잘것없는 지식들을
내 삶의 골짜기에 퍼붓기 시작하는
저 눈발 속에다
하나 남김없이 묻어야 함을 압니다.
---후략---

안도현((1961-) ‘겨울 숲에서’ 일부

사랑에는 겨울의 속성이 있다. 그것은 기다림이다. 고독과 설렘이 뒤섞인 사랑의 기다림은 눈을 맞으면서도 환하고 굳굳하게 서 있는 겨울나무와도 같다. 사랑이 있어서 겨울나무는 행복하고 겨울이 있어서 사랑은 깊어간다. 기다림의 긴 겨울을 모르는 사랑은 어쩌면 사랑이 아니다. 사랑하는 사람들이여 기다리자. 하나 둘 눈발 흩날리는 겨울날, 성긴 자작나무 숲 속에서 오래 더 오래.

임혜신<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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