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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칼럼/ 불임이 대물림되고 있다

2013-01-02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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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호(한국 마리아 병원 대표원장)

불임전문 의사에게 사람들은 곧잘 이렇게 묻는다. “손이 귀한 집은 왜 대대로 손이 귀한가요?”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손 귀한 집안은 불임이 될 소지가 부모로부터 자손에게 이어진다.

남성 불임의 80~90%는 정자를 제대로 만들어내지 못해 발생한다. 보통의 남성들은 정액 1ml 속에 1억개의 정자가 있다. 2,000만 마리 미만인 정자 희소증이거나, 50%이상 운동성 없는 죽은 정자를 가지고 있는 남성이 있다. 이런 경우 여성을 임신시키기 어려워지는데, 아버지가 정자 희소증이면 아들도 정자 희소증일 가능성이 높다. 선천적으로 불임인 남성이 의외로 많다.


인간 유전자는 46개 염색체로 구성된다. 그중 남성성을 결정하는 Y염색체의 일부가 결손이 되었거나 망가지면 정자 생산에 차질이 생길 수 있다. Y염색체의 망가진 정도가 심하면 무정자증이 될 수 있고, 경미할 경우 정자의 수가 적어지거나 활동성이 떨어져 난자까지 헤엄쳐서 갈 수 없게 된다. 또 정자의 꼬리가 두개거나 세개인 기형 정자가 될 수 있다. 정자 중에 기형 정자가 많아지면 수정력이 떨어진다.
예로부터 턱수염이 없어 얼굴이 매끈하고 피부가 하얀 남성을 두고 ‘귀티 난다’고 말했다. ‘귀티 난다’는 말은 남성에게 반갑지 않은 표현이다. 사내가 ‘잡초 같다’는 소릴 들어야지, 귀하디 귀해서야 자손을 번창시킬 수 있겠는가 말이다.
선조들은 남성 호르몬과 정자 수와의 관계를 의학적으로 알지 못했지만, 정자에 문제가 생기면 남성호르몬이 부족해서 얼굴이 매끈해지고 여성스러워진다는 걸 알고 있었던 게 아닐까 싶다.

불임은 유전된다? 남성 호르몬과 정자 수는 비례한다. 남성호르몬은 리비도의 근원이며 남성다움의 결정체다. 사내라면 모름지기 씨가 풍부해야 성욕이 넘쳐나고 아내를 多産(다산)할 수 있도록 해야하는 법이다. 매끈하고 여성다운 남성은 귀티야 나겠지만 성욕이 약할 수밖에 없다. 사내 같지 않은 예쁘고 참한 남성이 되는 것이다.
불임병원을 찾는 환자들 중에 자신을 ‘몇 대 독자’라고 소개하는 남성이 많다. 생식의학이 발전한 요즘에는 정자가 아예 없는 ‘비폐쇄성 무정자증’만 아니면 얼마든지 자손을 볼 희망이 있다.
무정자증 중에는 통로가 막혀 정자가 배출되지 못하는 ‘폐쇄성 무정자증’이 많기 때문이다. 이 경우 주사기를 이용해서 고환에서 직접 정자를 채취할 수 있다. 아무리 적은 수의 정자나 활동성이 없는 정자라도 머리카락 굵기의 10분의 1밖에 안 되는 바늘 안에 정자 하나를 집어넣고 난자에 직접 찔러 넣는 방식으로 수정을 시키는 것이 가능해졌다. 미세조작에 의한 인위적 수정을 한 뒤에 자궁에 이식을 해주는 원리다.

필자는 지금까지 수만명의 생명을 이 세상에 태어나도록 했다. 이중에는 ‘손 귀한 집 몇 대 독자’로 태어난 아기도 부지기수였을 것이다. 불임의사로서 한 가지 걱정되는 부분이 없지 않다. 현대의학으로 불임을 유전시키고 있다는 사실이다. 불임부부가 자꾸 늘어나는 이유 따져 보면 불임은 절대로 유전될 수 없다. 임신이 불가능해서 자손을 볼 수 없기 때문에 유전이 될 리가 없지 않겠는가. 하지만 고도의 생식의학이 당대에서 마감되어야 하는 불임을 야기하는 유전자를 계속 복제해주고 있는 셈이다. 현대 생식의학이 아버지의 Y염색체 결함으로 인한 선천적 불임을 아들에게 고스란히 물려주는 결과를 낳고 있는 것이다.

불임을 유발하는 유전자의 경우 혈우병과 색맹처럼 반성유전이 된다. 아버지가 가진 불임유전자는 Y염색체에 존재하므로 아들에게만 물려주게 된다. 아버지에게서 X염색체를 물려받는 딸은 불임과 아무런 관련이 없다. 불임유전자를 가진 남성들이 아들보다 딸을 낳으면 더 좋겠다고 생각하는 것은 바로 이런 이유에서다.
하지만 아들 딸 구별해서 낳기란 어려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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