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날아가는 세월

2012-11-26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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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효섭 (아동문학가 / 목사)

세상에 빠른 것이 많지만 시간만큼 빠른 것은 없는 것 같다. 엊그제 새 달력을 걸었는데 이제 남은 것은 한 장뿐이고 또 새 것으로 바꿀 때가 되었다. 시간만큼 무자비한 것도 없다. 조금만 더 시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지만 그 건 내 사정이고 시간은 내 안타까운 사정을 아는 양 모르는 양 찰각찰각 자기 페이스대로 쉬지 않고 전진한다.

레코드(Record)지는 뉴저지의 한 고등학교 교사의 감동적인 이야기를 실었다. 지난 토요일 41세의 젊은 나이로 암과 싸우다 별세한 헤일든 가톨릭고등학교의 부교장 토니 마리 할즈 씨의 이야기이다. 그녀는 결근 하루도 하지 않고 열정적으로 학생들을 가르쳤다. 학생들은 그녀를 ‘학장님’이라고 불렀다. 고등학교 평교사가 아니라 대학 학장의 자격자라는 뜻이다.


그녀는 체육교사였고 학교의 싸카 코치도 겸하고 있었다. 태도가 활발하고 늘 명랑하여 어느 누가 그녀를 4년간 암과 싸우고 있는 환자로 보지는 않았다. 하루는 학생 하나가 “선생님이 싸카팀에 들어간다면 어느 위치를 원하십니까?” 하고 물었다. 할즈 선생은 “팀 중에서 제일 힘든 자리가 어디냐?”하고 반문하였다. “미드필더입니다.” “그럼 당연히 나는 미드필더를 맡겠다.” 그녀가 늘 가르치던 교훈은 “젊을수록 시간을 아껴라.”는 말이었다고 한다.

“날아가는 세월을 절감합니다/ 그렇지만 지난날을 후회하지 말고/ 정직하게 돌아보게 하시며/ 앞에 놓인 나날을 걱정하지 말고/ 당신께 몽땅 맡겨버리게 하소서/ 시간은 주님의 선물 중 가장 값진 것/ 저축할 수도 물려 줄 수도 없사오니/ 지금부터라도/ 한 알 한 알 아껴 쓰게 하소서/ 살아가는 세월을 헤아릴 것이 아니라/ 한 번 뿐인 나의 생애로 받아들이게 하소서/ 주님께 보관된 나의 기록에서/ 일그러진 시간들을 고쳐 주소서/ 아멘.“

시간은 기다리는 자에게는 너무나 느리다. 시간은 두려워하는 자에게는 너무나 빠르다. 시간은 슬퍼하는 자에게는 너무나 길다. 시간은 신나지 않은 자에게는 너무나 지루하다. 그러나 시간을 주님과 함께 쓰는 자에게는 너무나 즐겁다. 시간은 돌아오지 않기 때문에 귀중하다. 시간을 받아주는 은행은 없으며 시간을 살 수 있는 백화점도 없다. 운동경기에서는 작전을 위한 타임아웃(time-out)을 불러 시간의 진행을 중단시킬 수 있지만 인생 경기장에서는 타임아웃이 없다. 시간은 택시의 미터기 같아서 타고 있는 사람의 사정과는 아무 관계없이 계속 나의 종말을 향하여 달려간다.

철학자 칸트는 세 개의 행복을 말한다. 첫째 보람찬 일을 발견한 자는 행복하고, 둘째 사랑할 대상을 찾은 자는 행복하며, 셋째 미래에 대한 확실한 소망을 가진 자는 행복하다는 것이다. 그런데 소망을 찾은 자는 첫째와 둘째 행복도 얻게 될 것이므로 결국 인간의 행복은 소망으로 결정된다는 말이 된다. 이란 주재 미국 대사가 감동 받았다는 이야기이다. 왕궁 현관에 유리 모자이크가 있는데 오색등에 조명된 그 작품은 참으로 아름다웠다.

감탄하고 있는 대사에게 한 사람이 설명하였다. “이 모자이크는 깨진 유리 조각들로 제작한 것입니다. 테러분자가 폭파한 건물에서 깨진 유리들을 모아 작품으로 만든 것입니다.”우리가 미래를 어둡게 보지 않고 희망을 가지고 기다리는 것은 깨진 유리 조각으로라도 아름다운 작품을 만드실 수 있는 하나님의 재창조의 힘을 믿기 때문이다. 오늘도 내가 감사하는 것은 모든 것을 잃어도 ‘내일’이라는 선물은 아직 남아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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