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재벌기부와 경제민주화

2012-10-24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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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주영(주필)

전세계 자본주의사회를 세차게 뒤흔들고 장기간 침체를 야기시킨 금융위기로 파급된 상처가 좀처럼 회복되지 않고 있다. 미국연방준비이사회(Federal Reserve Board)가 천문학적인 액수의 달러를 찍어내고 정부는 엄청난 공적자금을 풀어 구제금융을 시도했지만 달러가치 하락의 재정위기를 심화시켰을 뿐, 성장과 일자리 창출은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다.

경기회복의 바로미터인 경제성장률이 여전히 4%대를 밑돌면서 불황의 끝이 언제일지 탈출구가 보이지 않아 서민들의 걱정이 이만 저만이 아니다.1% 부자들의 탐욕으로 빚어진 이 심각한 사태는 한국도 예외가 아니다. 재벌들의 문어발식 경영이나 세습운영 등은 가까스로 먹고사는 99% 소상인과 서민들의 경제를 바닥으로 내몰았다.


재벌기업의 이런 그릇된 관행을 바로 잡겠다고 이번 대선에 출마한 박근혜, 문재인, 안철수 세 명의 후보들은 저마다 이구동성으로 재벌개혁을 운운하며 경제민주화를 부르짖고 있다. 그만큼 국가의 경제가 위기이고 무엇보다 국민들의 가장 중요한 관심사가 경제라는 공통된 인식 때문이다.

한국에서는 이번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강탈한 재산을 사회에 환원하라, 경제를 민주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이번 대선에 출마한 한 야당후보는 대통령이 되면 자신이 운영하는 회사주식 전체를 사회에 환원하겠다고 공언한 적이 있다. 가진 자의 사회환원이라는 화두는 이제 한국만 아니라 전 세계적 현상이 아닌가 생각된다. 이미 수년전부터 세계 최고 부자들이 자신의 재산을 사회복지 재단에 기부하자고 독려하는 움직임이 일기 시작했다.

빌 게이츠, 워렌 버핏 같은 당대 최고의 부자들은 이미 자신의 이름을 딴 재단에 재산의 상당부분을 기탁하고 다른 부자들에게도 동참을 요청해 왔다. 이들의 요청은 말이 요청이지, 어쩌면 묵언의 요구일지도 모른다. 우리같은 서민의 입장에선 왜 그들의 솔선수범이 1%로 불리우는 가진 자들에게 피할 수 없이 묵직하고 은근한 강요처럼 느껴질 수 있는지 감이 잘 오지 않는다.

그러나 어린아이들 세계도 보면 리더급인 반장이 어떤 행동을 하면 다른 아이들도 말없이 따라갈 수밖에 없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리더의 솔선수범은 어떤 조직이나 사회에서 왕따가 안 되고 체면치례를 위해서라도 시대흐름을 거역하기가 어려울 것이다. 부자들의 기부문화가 그런 것이 아닐까.

우리는 지금 하루에도 수없이 글로벌 경제 붕괴다, 돈의 가치가 증발하는 하이퍼인플레이션이다 하면서 미래를 비관하는 경제학자들의 말을 듣고 산다. 이런 상황에서는 도리어 돈 많은 사람들의 기부문화가 미국만 아니라 한국이나 이곳 한인사회에 자연스런 현상으로 정착될 수 있는 요소로 작용할 수 있을 것이다. 이제는 한국의 재벌들도 세계적인 부호들의 기부행렬에 이의 없이 동참했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

이제까지 한국의 재벌만큼이나 국민들에게 지탄받는 부류가 또 있을까. 이미 수백년 전부터 일반 서민들은 가진 자들의 횡포와 수탈에 이골이 나있다. 이제는 경제민주화라는 거대한 담론으로 가진 자들이 자기 재산을 주변을 의식하지 않고 함부로 굴릴 수는 없게 되었다.

한국에 경제민주화가 정착되고 재벌의 기부문화가 자연스레 이루어져 당장 한 명당 1,000억씩의 재산을 기부한다면 금방 10조원정도 규모의 펀드조성은 어렵지 않을 것이다. 그 정도 규모라면 국민들 혈세 없이도 얼마든지 기적을 많이 이루어낼 수 있다. 배고픈 아이들에게 무상으로 밥을 먹일 수 있고 경제적인 이유로 불가능하다 여겨지는 남북통일을 위한 기금도 어렵지 않게 조성할 수 있을 것이다.

모국인 한국에서 먼저 경제민주화가 이루어져 경제적으로 휘청거리는 미국에도 그 바람이 거꾸로 불어와 미국에 사는 모든 한인들이 어깨에 힘 팍 주고 타민족의 존경을 받으면서 거리를 신바람나게 활보하는 날이 올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juyoung@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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