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세 사람의 공감대

2012-10-22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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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병렬 (교육가)

“생일 축하합니다. 생일 축하합니다. 사랑하는 우리 한글 생일 축하합니다.” 여럿이 같이 ‘생일축하’ 노래를 부르면 한글날의 뜻을 어린 학생들에게 쉽게 전할 수 있다. “한글님, 올해 몇 살이 되셨어요?” “나, 올해 566살이 되었지.” “와아, 정말이에요?” 이런 대화로 재미있게 정보를 줄 수도 있다. 한글의 나이가 많다는 것은 큰 자랑이다. 그렇게 일찍 나라의 글자가 탄생하였으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즈음에야 한글의 우수성을 세계가 인정하게 되어 드디어 세계문자올림픽에서 금메달까지 탔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영어로 말하지 말고, 한글로 말하라고 했지” 이런 말을 듣게 되면 어리둥절한다. 서로 주고받는 문자통신이 아니고서야 어떻게 글자로 말할 수 있을까.


한글은 한국 고유의 글자이고, 한국어는 한국의 나라말이다. 한국어 공부를 한다는 것은 한국말 듣기, 말하기와 한글의 읽기, 쓰기, 글짓기에 익수하게 된다는 뜻이다. 어느 하나가 부족하거나 소홀히 되더라도 일상생활에 불편을 느끼게 된다.
요즈음 읽은 신문 기사 중, 세 사람의 글에서 공감대를 발견하였다. “지식인과 연예인은 글과 말로 얼토당토아니한 국적 불명의 언어를 사용하곤 한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엘레강스하고 시크한 언어로 오소독스한 한글을 멘붕에 빠뜨렸다’” 이것은 한국말과 한글의 변질을 염려하는 이상준 기자의 글이다.
국립국어원 김선철 연구관은 ‘외래어 · 외계어 · 비속어 남용 100년 뒤 우리말 자취 감출 수도’ 라는 제목의 글을 썼다. 그는 외래어 사용 빈도 가속이 우리말 파괴가 심한 수준이어서 조사(토씨)와 어미만 남을 수 있다고 염려한다.
“지금 이대로 2,3세대 지나면 우리말은 -은/는, 이/가, -을/를 과 같은 조사와, -(이)다 같은 어미만 남게 될지도 모릅니다.”라고 했다. 또 “이번 한글날엔 우리말을 고민하는 날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우리말은 곧 우리의 미래거든요”하고 말하였다.
필자는 ‘한국말 찾기 게임’ 이라는 글에서 ‘상상력을 편다. 2050년 첫날 타임캡슐을 여는 날……한국말의 존재가 희미해졌음에 놀란 한국인들이 긴급 대책을 세웠다. 한국말을 수입하자고...’ 어디서? 오래 전 해외에 이주한 한국인이나, 그동안 한국말을 가르쳐준 외국인들에게서... 설마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을까? 아마도. 한국말을 지키려는 공감대의 파급이 없다면.
앞에 예로 든 세 사람은 한국말이 처한 현재 상태에 위기감을 느껴서, 한국말의 변질에 대한 경종을 울린다.

말과 글은 한 뿌리에서 태어난 생각의 표현 방법이다. 말은 음성표현이고, 글은 문자 표현이다. 우리나라 역사를 보면 다른 나라의 한자를 빌려 우리말을 표현한 시대가 있었다. 그러면서도 한국말을 살리려고 노력하였지, 말까지 바꾸려고 한 일은 역사상 그 예가 없다. 일제 강점기에 일본말 사용을 강요당했지만 한국말을 송두리째 없애지 못했다. 한국말은 반만년의 역사가 숨 쉬는 민족의 혼이고, 마음이다.

학생들 중에는 다행히 조부모님과 함께 생활하면서 말이 숙달되었음을 보여주는 예가 많다. 이들이 한글을 배우는 것은 비교적 쉽다. 한글이 영어처럼 소리를 나타내기 때문에 요령 좋게 지도하면 향상의 속도가 빠르다. 한편 영어에만 익숙한 학생에게 한국말이 어려운 이유는, 어순 즉 주어와 술어의 위치가 다르기 때문이다. 이 점을 이해한다면 재미있게 학습할 수 있다.

언어의 학습효과는 사용 빈도에 정비례한다. 첫째는 배우려는 학습동기가 있고, 반복 연습하면 성과의 속도가 빨라진다. 우리가 다음 세대에 전승할 책임이 있는 것은 한국문화이고, 한국문화의 중핵은 한국말 · 한글이다. 따라서 한국말다운 적절한 표현이 사용되길 바란다.

앞으로 한국말을 아름답게 가꾸려는 공감대가 점차로 커지고, 한글날은 한국말과 한글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기념일임을 깨닫게 되기를 바란다. 다행히 한글날이 다시 국가의 휴일이 된다면 10월은 정말 시월 상달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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