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기자의 눈/ 미국생활과 우리 명절

2012-10-16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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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려<웨체스터 지국장>

지난 달 H마트에 들렀더니 추석이라고 고객에게 송편을 제공하면서 특별행사를 하는 매장이 있었다. 새롭게 내가 한국사람이라는 기분을 느꼈다. 퀸즈나 뉴저지 공원에서 매년 이맘때에 한국사람들 끼리 모여서 추석잔치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먼 곳에서 일어나는 일이었다. 여기 웨체스터에 거의 30년을 살고 있지만 추석 지킨 일이 거의 없었다.

대부분의 교회에서도 추석에 대한 언급조차도 없었던 것 같다. 송편을 준비하기가 어려운 점도 있었겠지만, 조상에게 제사를 지내는 행사라서 그런지 다과시간에 송편이 나오는 일도 없었던 것 같다. 그런 면에서는 설날도 마찬가지다. 사실 이런 민족의 명절은 우상숭배가 아닌 한국의 문화이며 정서가 아닌가 한다.


추석무렵 한국 TV를 보면서 각 프로그램마다 아나운서들이 ‘한국 최대의 명절’이라는 말을 하는 것을 들었다. 이 지역에 사는 많은 유대인들이 그들의 명절인 욤키퍼(Yom Kippur), 로시 하사나(Rosh Hashanah) 같은 날을 학교에서 쉬는 날로 정할 정도로 자기들의 문화를 철저하게 지키고 있다. 중국 사람들도 설날이 되면, 학교에서 드래곤 댄스같은 특별행사를 연다. 여기 사는 한인들이 그동안 한국 메인 스트림과 떨어져 있다는 지역적 이유 등의 여러가지 요건이 있었겠지만, 한국 명절과 별 상관없이 살아 온 것이 사실이다.
오히려 전혀 미국화 되지 않은 한인들을 부정적으로 보는 경향도 없잖아 있다. 그렇지만 오늘날 미국사회에서야말로 각각 자기 나라 고유의 문화를 지키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모든 분야에서 깨닫게 된다.

이스라엘의 어느 젊은이가 90세가 된 할아버지 팔뚝에 새겨져있는 아우스비츠 감옥 죄수번호를 자기 팔에 문신해 넣었다는 뉴스를 읽었다. 오늘 자기가 존재하기까지에는 어려움을 겪어낸 조상이 있었다는 것을 결코 잊지 말자는 행동이다. 국적이 불분명한 현대 예술일수록 그 예술가가 어느 나라 사람이며 어떤 부모를 가졌으며 어떤 문화의 영향을 받았느냐를 중요하게 다루게 된다. 한 사람의 스포츠 맨이 온 나라의 명예를 걸머지는 것과 그 스포츠맨이 있기 까지 어떤 부모가 있었느냐가 크게 관심의 대상이 되는 것과 다르지 않다.

미국방송에서 ‘강남스타일’이 하루에도 수십 번씩 나오는 요즘, 저렇게 우스꽝스런 춤으로 세계를 사로잡은 싸이의 뒷배경에는, 추수만 감사하는 것뿐만이 아니라 세상에 안 계시는 부모와 조부모와 증조부모들을 기억하는 훌륭한 풍습이 깊숙이 서려있다는 것을 우리의 피가 섞이는 자손들에게 전해줘야 할 것 같다.

한국 최대의 명절인 추석을 그저 강 건너 불 보듯, 오히려 서울부터 부산까지가 주차장이 된다는 한국 뉴스를 볼 때 “아니 뭐 저 야단들이냐” 했었던 나부터라도 우리 민족의 문화를 소중히 지켜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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