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이제는 문학이다

2012-10-12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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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병임(논설위원)
올해 노벨문학상은 한국이 수상하지 않을까 기대했지만 중국 소설가 모옌에게 돌아갔다. 그의 대표작중 하나인 ‘붉은 수수밭’은 장예모 감독에 의해 1989년 영화화된 적이 있다.

화면이 온통 붉은 옥수수밭 속에 눈이 시리게 새빨간 가마가 지나가고, 하늘까지 벌겋게 불타오르던 붉은 수수밭 등 영화의 장면들이 기억난다. 나귀 한 마리 값에 문둥병환자인 양조장 주인에게 팔려간 18세 여주인공 추알 역으로 궁리가 나왔었다. 검붉게 헐벗은 산야, 양조장 사람들이 일본에 대항해 싸우던 장면은 소설의 어느 부분보다도 관객의 머리에 선명하게 각인되었었다.

모옌의 노벨문학상 수상은 중국인으로는 처음이다. 중국태생 가오싱젠의 ‘영혼의 산’이 2000년에 노벨문학상을 수상했지만 그는 1987년 정치적 망명을 하여 국적이 프랑스였다. 일본은 1968년 가와바타 야스나리, 1994년 일본의 오엔 겐자부로가 노벨문학상을 받았고 이번에 중국작가 모옌이 받은 것이 18년만에 아시아 국가가 차지한 것이라 한다.
한국의 노벨문학상은 언제 기회가 올 것인가. 일반백성이 쉽게 읽고 사용하는 한글은 얼마나 빼어난 창조물이며 이 한글로 쓰여진 한국문학에는 또 얼마나 빛나는 작품이 많은가.


몇 년간 노벨상 후보로 이름이 오르내리는 고은 시인, 그의 작품은 국제무대에서 높은 평가를 받고 있어 이번에도 수상을 기대했으나 기회가 오지 않았다. 고은의 대표작 ‘만인보’는 ‘살아있는 만 개의 생명’이란 뜻으로 민주화운동으로 수감생활을 하던 당시 구상되어 30년에 걸쳐 완성된 총 30권의 시집이다. 소설가로는 황석영의 장편 ‘장길산(張吉山)‘, 그야말로 소설의 금자탑이 아닌가. 조선 숙종시절 의적의 이야기로 1974년부터 1984년까지 10년간 한국일보에 연재되며 장안의 종잇값을 올렸다는 말이 있을 정도다.

어느 대학 국문과에서는 학생들에게 장길산의 첫장을 베껴 쓰고 외우게 하는 수업이 있을 정도로 토속적인 우리말과 정서를 담은 내용이 압권이다. 장길산은 1985년 중국에서 번역되었고 1986년에는 ‘객지’와 ‘무기의 그늘’이 일본에서, ‘황석영 소설선집’은 1988년 대만에서 번역 간행되며 분위기를 몰아갔지만 그는 여전히 노벨문학상 언저리에 못가고 있다.

이런 말이 있다.
국민들에게는 평화로운 세상이 최고지만 작가에게는 험난한 조국의 근현대사가 좋은 소설의 소재가 된다는 것이다. 한국의 근현대화 시기를 살아온 원로작가는 한일합방후 일제식민지 치하-해방이후 혼란한 정국-6.25전쟁-휴전-현대화 과정 등등 수많은 이얏기거리의 보고를 지녔다.

역사의 굴곡 속에 파란만장한 삶을 살아온 원로작가 중에 좋은 작품이 많은데 아직도 노벨문학상 작가가 나오지 않았다는 점에서는 국가적으로 반성해야 한다.
시도 때도 잘 만나야 하지만 우선 국가적인 차원에서 좋은 작품을 적극 번역하여 서구권에 널리 알려야 한다.

춘향전이나 장희빈 같은 영화나 드라마 그만 만들고 민중의 삶을 다룬, 우리 역사를 관통하는 ‘장길산’ 같은 드라마나 영화를 잘 만들어야 한다. 장길산은 2004년 SBS-TV 50부작으로 나온 적이 있지만 너무 많은 것을 이야기하려다가 지루하게 끝난 적이 있었다.

그동안 드라마 각본과 촬영 기술이 엄청 발달했으니 광대들의 춤, 길산과 묘옥의 아픈 사랑, 의적들의 싸움 등등이 ‘붉은 수수밭’처럼 잊혀지지 않는 명장면으로 남으면 세계인들이 그 작가를 알게된다.

한국어로 된 싸이의 ‘강남스타일’이 전세계를 덮고 있는 이때, 한국에 대한 관심도 고조될 것으로 보인다. 각국 언어로 잘 번역된 한국문학, 여러 장르를 통한 한국의 정서와 문화가 세계인들의 마음속에 파고들기를 고대한다. 한때 노벨문학상 작가 만들기 움직임이 젊은층 사이에 잠시 있었으나 그냥 지나가고 말았다. ‘우리도 이만한 작가가 있다’는 것을 세계적으로 알리자면 우리가 먼저 그 작가와 작품을 아끼고 위해주어야 하지 않을까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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