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연극, 그 재미

2012-10-08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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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병렬(교육가)

장두이씨가 미국을 떠날 때 “이젠 한국연극에서 멀어지겠구나”하는 일말의 쓸쓸함을 느꼈다. 그는 뉴욕에 있는 동안에 활발하게 연극 활동을 하였고, 다각적인 연출로 새로움을 발휘하였다. 그런데 뜻밖에 그가 몇 가지 작품을 가지고 뉴욕에 돌아와서 일주일 동안 공연을 하였다. 미국에 한국연극의 붐을 일으키겠다는 큰 포부를 가지고. 하지만 네 가지 공연 중 세 가지가 한국말 대사인데 미국인 관객을 이해시킬 수 있었을까? 놀랍게도 그것은 한낱 기우였다.

시사 주간지에 실린 클린턴 전 대통령의 기고문처럼 사람들이 더 살기 좋은 세계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였기 때문에 우리 세상이 전반적으로 계속 발전한다는 낙관론에 동의한다. 또한 사람들은 즐겁게 사는 방법 연구에도 꾸준함을 보였다. 그 중의 하나가 연극이며 우리나라에서는 삼국시대부터 연극이 시작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처음에는 가면극이나 인형극의 형태로서 이어오다가 판소리를 거쳐 오늘에 이른 것으로 기록에 남아있다.


왜 연극을 하는 사람이나, 감상하는 사람들이 열광하는 것일까. 그것은 무대 위에서 펼쳐지는 일들이 나 자신의 투영이기 때문이다. 즉 인생을 객관시하는 즐거움이다. 연극의 대사를 말하고 거기에 맞춰 보여주는 연기 등은 틀림없는 일상생활의 한 토막에 초점을 맞춘다. 그렇더라도 대사를 모르는데 내용을 이해할 수 있을까.

장두이씨의 이번 공연은 한국내 연극의 현주소를 알려주었다. 연극의 개요를 알면 대사를 모르더라도 그 내용을 잘 이해할 수 있는 작품이었다. 대사의 분량보다는 음악과 무용, 움직이는 무대장치와 보조기구 등으로 장면을 이어갔다. 언어와 동작, 배경음악이 혼연 일체가 되어 주제를 강조하였으니 대사를 모르는 외국인 관객들조차 감동하기에 충분하였다. 그는 뚜렷한 현대 연극계의 중심이었다.

이 지역 학생들이 연극을 하거나 즐길 수 있을까. 한국말을 배우는 방법 중의 하나가 연극을 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안녕하세요?’라는 말을 익히기 위해 같은 말을 반복시키려면 어떤 방법이 있을까? 학생들이 마주 보고 나란히 서서 인사말을 한다. 자리를 바꿀 때마다 다른 상대와 인사말을 한다면 여러 번 같은 말을 즐기면서 되풀이하게 된다. 이것이 바로 연극이고, 말을 배우는 방법이다. 글의 내용을 이해시키기 위해서도 간단한 연극을 꾸미면 좋다. 흥부와 놀부의 배역을 정해서 그들의 말을 익힌다면 내용 이해에 도움을 준다.

인생이란 무엇일까? 살아간다는 것을 하나의 연극으로 생각할 수는 없을까. 제각기 무대에 서서 각자가 맡은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연극의 주제와 배역은 각자가 선택하였고, 무대는 온 세계이고, 공연 기간의 길고 짧음은 모든 조건에 따라 결정된다는 생각을 해본다. 그것도 인생이 즐겁다는 바탕 위에서.

어쩌다 링컨센터의 연극을 본 일이 있다. 저 아래 무대가 있고, 계단식 좌석에 앉은 관객들은 마치 거실에 앉아있는 가족 같았다. 연극의 진행에 따라 마음 놓고 웃으며, 옆 사람과 마주보고 고개를 끄덕이며, 연극의 분위기를 배우와 함께 조성하고 있었다. 이런 분위기를 사랑하기 때문에 관객이 줄지 않으며 장기공연으로 이어지는 것 같다. 연극의 매력 중 빠뜨릴 수 없는 것이 관객들을 무아지경에 몰입하게 만드는 일이다.

이 지역에도 한국연극 붐이 일어나기를 바란다. 출연자와 관객이 함께 즐길 수 있는 활동이기 때문이다. 한국말을 흥미 있게 배우고, 한국말의 참뜻을 알리고, 한국말의 생명을 이어가고, 내 자신이 한국문화에 젖고, 재미있는 방법으로 한국문화를 소개하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개인의 아름다움은 독특한 개성에 있고, 나라의 아름다움은 역사로 쌓인 그 나라의 문화에 있다. 한국은 나라 안팎에서 고유한 문화를 따르고 이어나가면서, 새로움을 보태는 일과 다른 문화를 이해하는 일을 하는 문화의 나라가 되기를 바란다. 이 중의 하나가 한국연극의 활성화이다. 연극의 재미에 푹 빠진다면 얼마나 신나는 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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