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포퓰리즘 신데렐라

2012-10-04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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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민자(의사)
지난 주말 뉴욕 메리어트호텔 마르퀴스 극장에서 장기 공연되고 있는 브로드웨이 에비타(Evita) 뮤지컬을 보았다. 뮤지컬 거장인 앤드루로이드 웨버의 작곡과 팀 라이스의 작사로 돌풍을 일으킨 흥행명작이다. 시골 빈민 출신의 소녀가 신분상승의 사닥다리를 타고 1940년대 중반 아르헨티나의 대통령 부인이 된 후 33살에 암으로 죽는 불꽃같은 짧은 생애를 그린 뮤지컬이다.

뮤지컬은 군중의 슬픔 속에서 열리는 60년 전에 죽은 에비타의 장엄한 장례식으로 막이 열리고 뮤지컬이 진행되는 동안 관객들의 박수갈채로 극장 안을 뜨겁게 달구었다. 뮤지컬의 여주인공인 에비타가 “나를 위해 울지 말아요, 아르헨티나여! (Don’t cry for me, Argentina)”라는 가슴을 예리한 칼로 도려내는 듯한 애절한 환상적인 곡을 부를 때 내 옆 좌석의 중년여인이 흐느끼며 울고 있다
에비타의 극적인 생애는 연극, 뮤지컬, 영화 등으로 수없이 반복되어 재조명되고 있다. 에비타는 1919년 시골 농장주의 사생아로 가난과 학대 속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다. 그녀는 15살에 남미의 파리라고 불리는 아르헨티나 수도인 부에노스아이레스로 고향에서 도망친다. 그녀는 닥치는 대로 모델, 단역배우, 라디오 진행자로 전전하며 온몸으로 부딪치며 살아간다. 그녀의 삶은 정치무대에서 권력중심부에 있는 후안 페론 대령을 운명적으로 만나면서 극적으로 반전된다. 에비타는 후안 페론과 결혼을 하고 수직상승의 꿈을 이룬다

그녀는 대중을 끌어들이는 카리스마로 노동자의 압도적인 지지를 끌어내 드디어 남편을 대통령으로 당선시킨다. 에비타는 1946년 대통령 취임식 날 대통령 궁 발코니에서 손을 흔들며 눈부신 미모의 영부인으로 권력의 정점에 서게 된다. 정치적 야망으로 결합된 페론(peron)부부 정권이 출범하는 순간이다. 에비타는 남편과 최고통치자의 권력을 나누어 갖는다. 페론정권은 페로니즘 (Peronism)즉 포퓰리즘(populism)을 잉태하는 산실이 되었다. 에비타는 소수의 지배층이 통치하는 엘리트주의 개념을 뒤집어 업고 대중을 대변하는 감성정치를 통하여 폭발적인 인기를 얻는다.


에비타는 대중의 마음을 끌어들이는 흡인력과 달변으로 군중을 열광시켰다. 그녀는 여성참정권, 노동자 임금상승, 무료진료 등으로 사회복지정책을 추진했다. 에비타는 본능적으로 밑바닥 삶의 아픔을 이해하고 공감대를 형성했다 그녀는 즉흥적으로 대중이 원하는 것을 제공하면서 퍼주기 정책을 폈다. 에비타는 20세기 현대정치사의 복지 포퓰리즘의 신데렐라로 급부상한다

그녀가 권력의 정점에 있을 때였다 그녀는 옆에 있는 측근에게 물었다. “지금 몇 시입니까?”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당신이 원하는 시간입니다” 그녀는 자궁암으로 33살의 짧은 나이로 생을 마감한다. 그녀 역시 죽음의 시간을 선택할 수 없었다. 결국 만병통치약 같았던 복지정책으로 정부의 곳간은 텅텅 비어갔다. 그녀는 서민층에게는 성녀로, 기득권층에는 20세기 초기 7대 부국이었던 나라를 빈민국으로 추락시킨 악녀로 부르는 상반된 두 얼굴로 남았다.

탱고의 출발은 19세기 전후로 유럽에서 홍수같이 밀려온 스페인-이탈리안 계 이민자들이 모인 아르헨티나 항구도시에서 서민층의 삶을 달래는 춤이었다. 탱고는 유럽의 상류층으로 산불처럼 퍼져나갔다. 격정적인 탱고는 강렬한 생명력을 지닌 춤이다. 아르헨티나의 탱고처럼 에비타의 포퓰리즘은 세계로 확산되는 글로벌화 초석이 되었다.

IT 시대 막바지에 다가선 한·미 대선에 후보들의 알맹이 없는 복지정책을 쏟아내고 있지 않은가? 에비타는 살아서는 포퓰리즘의 신데렐라로, 죽어서는 잠자는 미녀 혹은 포퓰리즘의 마녀로 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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