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천당 가까운 구백당이라니까요!

2012-10-01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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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 일상, 깨달음

▶ 정 한 나 <남가주광염교회 사모>

얼마 전 꽤 오래 계속된 무더위가 캘리포니아의 늦여름을 장식했다. 지나가는 가랑비조차 아까운 남가주에 끓어오르는 지열까지 더해져 몇몇 작은 지진소식까지 들려왔다.

모든 것이 편리해진 시대여서 일까. 웬만한 뉴스로는 놀라지도 않고, ‘너는 너. 나는 나’의 지독한 이기주의를 경험할 때면 울적해지기도 한다. 각 분야의 전문가들을 셀 수 없이 늘어났지만 여전히 풀리지 않는 문제들은 끝없고, 빨라진 교통수단이 여유를 가져오기는커녕 더 피곤해하며 수면제를 먹고도 잠 못 이루는 사람들이 줄지 않는다.

천고마비의 풍성한 가을이라 노래가 절로 터져 나와야 하는데도 책 한권 읽을 시간 없이 뛰고 또 뛰는 현대인들 주위에서 살며, 참된 여유를 찾는 길은 무엇일까 고민하게 된다.


인공조미료 없이 가마솥에서 막 쪄낸 감자, 고구마로도 행복했던 시절들이 엊그제 같은데 먹거리 풍성하고 넉넉한 캘리포니아에 살면서도 행복할 수 없다면 우리의 병이 깊지 않은가!

어렵고 힘든 시간을 통과한 사람에겐 일상의 모든 것이 감사조건이 된다. 그와 반대로 너무 편하고 살기 좋은 환경들이 오히려 감사와 기쁨을 잃어버리게 하는 것 같아 안타까운 마음이다.

언제나 그렇듯이 모든 것은 생각하기에 달렸다. 그런데 그 ‘생각’하는 기능이 무방비 상태이기에 오만가지 생각들이 하루에도 수만 번 들락날락 하는 동안 금쪽같은 하루가 휘리릭 날아가 버린다.

생각에도 훈련이 필요하다. 좋은 생각은 건강한 마음에서 온다. 건강한 마음은 바쁘고 급한일보다 소중한 가치를 찾아내는 능력이다. 매일 식욕을 느껴 밥을 먹는 것처럼 선하고 좋은 일에 저절로 달려가는 선한 욕구가 절실하다. 선한 욕구는 항상 단순하고 소박하다. 또한 어린아이처럼 순수해서 어떤 이를 따지지 않고 금방 행동으로 옮긴다.

그 바탕은 대부분 사랑이어서 작은 생각이 느껴지면 주위가 따뜻해지고 부드러워진다. 모든 시선에서 무장해제 되는 순박한 아름다움이 그립다. 힘을 빼야한다. 꼭 필요한 것 외에는 과감하게 내려놓고 던져 버리자.

천당 가깝다는 구백당 캘리포니아에서도 행복할 수 없다면 그것은 전적으로 내 책임이다. 꼭 필요한 기본적인 것부터 챙겨놓자. 나와 가장 가까이에 있는 사람들을 행복하게 만들자.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고마웠던 사람들을 기억하여 사랑의 안부를 묻자. 따뜻한 미소, 한 마디 격려를 들고 손을 내밀자.

푸르른 하늘, 새파란 나뭇잎, 이름 모를 꽃들에게도 환하게 웃으며 감사하자. 쉬지 않고 뛰어준 심장, 내 몸을 도느라 수고한 혈액에게도 고맙다고 인사하자. 아무 일 없이 아침에 눈 뜰 수 있는 것이 얼마나 큰 기적인가!

온 몸의 세포가 박수치며 따라 웃게 하는 치유는 돈도 들지 않는다. 오늘 하루만이라도 구백당이 천당 되도록 살고 싶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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