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지구촌을 뒤흔드는 싸이현상

2012-09-26 (수)
크게 작게
여주영(주필)

한국 가수 싸이가 노래 ‘강남스타일’과 말춤으로 요즘 돌풍을 일으키며 미국을 비롯해 전 세계를 뒤흔들고 있다. 그 증거는 유튜브(youtube.com)에 널려 있다. 인터넷 검색창에 ‘강남 스타일(Gangnam Style)’을 넣어보면, 이에 관한 수많은 패러디 동영상을 발견할 수 있다. 싸이의 노래에 ‘시카고스타일’ ‘뉴욕스타일’ ‘대구스타일’ 이라는 제목으로 공을 들여 영상을 입힌, 자작 뮤직 비디오들도 넘쳐난다.

두달 만에 벌써 2억명이 넘는 사람이 보았다고 하니, 이대로 간다면 앞으로 전세계인이 한 번씩 볼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까지 든다. 대체 싸이가 누구고 그 춤이 뭐길래 이처럼 전세계인이 난리들인 것인가? 30대 쌍둥이 아기 아빠 ‘싸이(PSY)’의 이름은 정신병자를 일컫는 ‘싸이코(Psycho)’에서 딴 것이라고 한다. 세상을 풍자하는 노래 내용에서 볼 때, 싸이는 뭔가 기존의 맘에 들지 않는 기득권 세력, 프레임에 갇혀 살면서 울부짖고 싶어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탈출구와 같은 역할을 한다는 느낌을 주기 위해 만든 필명이 아닌지 모르겠다.
실제로 그는 기발한 율동을 통해 허례허식하고 부패에 물든 사회 기득권층, 소비문화와 기계문명에 길들어진 21세기 현대인들, 사회가 어지럽게 돌아가고 있음을 본능적으로 느끼는 뭇 세인들에게 자신을 낮추고, 웃기게 포장해서 대리만족을 시켜주고 있는 것 같다.
‘강남’이란 글자만으로 외국인들에게 ‘서울이 어느 나라 도시냐고 물어보면, 의외로 한국이라는 답을 모르는 경우가 많다. 미국인 이웃과 30년간 서로 “하이(Hi)” 하면서 살아왔어도 그들은 강남은 물론, 서울에 대해 잘 모른다. 그런 세계인이 이제는 서울보다 ‘강남을 더 자연스럽게 말하게 되었다는 사실’은 놀랍기도 하고, 한편 어리둥절하기도 하다. 가본 적도 없는 외국인들이 혀를 돌리며 어색한 어조로 ‘강남(Gangnam)’을 발음하면서 이 노래에 맞춰 율동을 따라 하는 데에는 특별한 이유가 있는 듯하다. 힘겨운 99% 서민의 마음을 달래주고 한마당 몸을 흔들게 하여 새로운 힘을 얻게 하는 그 무엇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강남’이란 어떤 곳인가? 낮에는 사람들이 멀쩡하다가도 불빛이 현란한 밤이 되면 온갖 퇴폐와 환락이 난무하는 속에서 미친 듯 돌아가는 이중적인 도시라고 한다면 너무 과한 표현일까. 전세계의 대도시는 대부분 이러한 두 얼굴의 분위기 속에서 굴러간다는 얘기가 있다. 어찌보면 그 어느 대도시보다도 더 격렬한 삶의 스타일과 자기 내부의 심리적 갈등을 심하게 겪고 있는 도시가 바로 한국의 서울, 그 중에서도 강남이 아닐까.


강남에는 억대가 넘는 독일제, 이태리제 스포츠카가 도로에 넘쳐난다. 상당수의 어린 학생들이 새벽까지 학원을 다니고, 학원을 나오면 밖에서 졸린 눈을 비비며 차안에서 대기하고 있던 부모들에 의해 집으로 끌려가다 시피 승용차에 실려 가는 모습이 흔히 눈에 띤다. 이 정도면 어느 올림픽에서도 모두 세계 금메달을 딸 수 있을 것 같은 바로 그 강남이다. 밤낮으로 수많은 젊은이들이 거리로 나와 저마다 부티 나고 스타일을 뽐내는 지역으로 비쳐지기도 한다.

그 강남이 왠지 앞으로 전세계인의 롤 모델이 되지 않을까 하는 긍정적인 느낌이 드는 건 나만의 생각일까. 이 젊은 한국 가수의 음악작품이 순식간에 전세계 미디어의 이목을 집중시킨 것은 우연의 일치가 아닌 듯싶다. 올해는 한국과 미국 등 여러나라가 선거열풍이고, 이스라엘과 이란, 일본과 중국 사이에 당장이라도 3차 세계대전이라도 터질 것만 같은 예감이 들면서 이런 위기속에 한국이 오히려 더 단단한 강국으로 떠오르는 건 아닌가 하는 희망을 갖게 하기 때문이다.

한국인이 누구인가. 40년만에 한강의 기적을 일구어 전 세계에서 으뜸으로 인정받고 있는 당찬 민족이 아닌가. 강남스타일에서 뿜어지는 열기가 지구촌을 달구는 것도 또 한번 한국이 비상하려는 신호탄이 아닐까.
juyoung@koreatimes.com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