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봉산탈춤의 해학

2012-09-22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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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근영(목사)

신학자이자 기독교 윤리학자로 20세기가 낳은 위대한 지성, 라인홀드 니버(Reinhold Nieburh)는 유니언 신학교 교수로 재직하던 중 ‘도덕적 인간과 비도덕적인 사회’란 논문을 내 놓았다. 그는 이 책에서 제목 그대로 한 개인을 이타심과 도덕성을 지닌 한 개체로서의 인간으로 소개하였다. 한편, 사회는 이기적이고 비양심적이어서 집단이익을 위해서는 부도덕을 감행하는 과정 속에서 서로의 충돌이 불가피하게 되었고 이러한 사회 계급의 악을 견제하기 위해서는 종교와 도덕적 지성이 간섭해야 하며 또 지도적 위치의 도덕적 그룹이 이를 방임할 때 자가당착에 빠지게 된다는 논리로, 결국 그는 개인적 도덕과 사회가 양립하는 방향에서 해결돼야 한다는 절충안을 내놓으며 결론을 낸다.

‘절대 선(善)은 기대할 수 없다’는 말 같이 어떤 주의(ism)에도 모순은 항상 존재하였고, 자본주의라고 해서 특혜를 주지 않았다. 이른 바, ‘봉산탈춤’의 사회평론이 한 좋은 예가 될 수 있다. 서민과 천민들이 황해도 봉산장터에서 어우러져 추었던 이 춤은 사자탈춤이 특색이며, 그 내용은 주로 지배계급인 양반들에 대한 풍자와 모욕, 또 종교지도자인 ‘파계승’에 대한 부정을 폭로하는 해학적 탈춤이 주종을 이룬다.


이를 테면 탐관오리들의 은폐된 축첩제도, 즉 부도덕한 성문제를 들추어내어 냄새나고 이 너절한 관중들은 배꼽을 잡고 구르면서 얼쑤! 한마당 놀며 스트레스를 풀었던 춤이다. 봉산탈춤에서도 어느 사회든 노출되는 세 가지 이슈, 즉 돈과 성(性)과 성(聖)의 타락을 이룬다.
탈춤의 사회적 성격은 단순히 흥미위주가 아닌, 부정폭로, 고통의 울음소리를 웃음으로 승화시키는 저항운동이었다. 일찍이 예수께서도 탈춤의 광대가 되어 장터에 앉아 피리를 불어도 춤추지 않고, 애통하여도 가슴치지 않는 세대를 풍자하여 비탄하였었다. 또 마태의 복음 23장에서는 독사의 탈을 쓴 교권자들의 부패를 향해 비창(悲愴)의 몸부림 탈춤으로 폭로하였다.

뿐만 아니라 ‘양의 탈을 쓴 늑대’(마7:15)를 풍자하면서 경고하고 있다. 사이비의 화장술은 가히 완벽하여 민중 뿐 아니라 예수까지 속이려 하였고 그들은 예수의 도덕률을 율법으로 오인하며 행함으로만은 구원을 얻을 수 없다는 괴변으로 천사의 가면을 쓰고 다가온다.

이 세 가지 부패상으로 어지러운 오늘날, 예수의 도덕 무용론에 무게를 받아 ‘빛과 소금’의 교회사명을 감당하지 못한 결과, 땅에 밟히게 되어 이젠 개의 탈을 쓴 개독교란 별명에 부화가 치민다. 우리의 짧은 근세사 속에서 잊지 말아야 할 단어가 있다면, 그건 ‘사상(思想)’이란 단어일 것이다. 이미 우리가 세계 1.2차 대전과 6.25전쟁을 몸소 겪으면서 검증된 단어이기도 한데 ‘건전한 사상이 건전한 사회를 만든다’는 게 짧은 결론이다. 지금 미국에는 싸이가 추는 ‘강남스타일’의 말춤이 한창인데 ‘봉산탈춤’은 시대착오적 발상이라 할 터이지만 이 시대에 꼭 추어야 할 잊을 수 없는 춤이기 때문이다.

이 시대는 날이 갈수록 차마 입에 담을 수 없고 눈을 뜨고 귀를 열어놓고는 보고 들을 수 없는 온갖 추악한 사건들로 점철돼 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모순당착에 빠진 부패한 사회와 화장에 얼룩진 병든 지도자들은 이제라도 서둘러 위선의 탈을 벗어들고 니버의 거울 앞에 서서 “그러면 우리는 누구를 통해 구원을 얻을 것인가?” 물어 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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