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일본과 한국문제에 끼어드는 중국

2012-09-22 (토)
크게 작게
김철우(자유기고가)


세계 1차 대전이 시작되던 해 1914년 독일 돈 1마르크는 1919년 1월 2.6배로 오르더니 그해 7월 6개월 만에 물가지수는 5배로 뛰었다. 전쟁이 끝나고 국가 재정이 말라버린 독일은 초고속 인플레이션을 맞이했다. 1922년 7월 이후 물가지수는 15개월 동안 점점 빠른 속도로 올라 급기야는 인쇄 속도를 추월했다.

조폐소는 화폐 가치가 하락하는 속도만큼 새로운 돈을 찍어 낼 수 없었다. 1923년 말엽에는 300곳의 제지공장들이 최고의 속도로 종이를 제작하여야만 했으며 지폐를 조달하기 위해 2,000대의 인쇄기를 밤낮으로 가동해야만 했다. 1만 마르크, 200만 마르크, 1,000만 마르크, 그리고 10억 마르크란 화폐를 찍어야만 했다. 1914년 1마르크의 돈의 가치가 10년 후 도매물가지수 무려 726억 마르크로 하락한 것이다.


자본주의 국가에 있어서는 인플레이션 보다 더 무서운 것이 디플레이션이다. 한국도 1950년대 전쟁으로 국토가 폐허돼 버린 후 모든 물자가 부족한 상태에서 극심한 인플레이션을 겪어야 했다. 그러나 일본은 세계2차 대전이 끝난 후 한반도 전쟁의 영양을 받아 눈부신 경제성장을 이룩했다. 60년 70년 80년대 세계 최고의 경제대국으로 올라선 것이다.

국제 정세를 지켜보던 사람들 대부분은 곧 미국 경제를 넘어설 것이라고 믿었다. 그러나 일본의 위기는 니케이 지수가 39.000에서 1.3000으로 떨어지면서 시작되었다. 주식가치가 3분의2 거품으로 날아가 버린 것이다. 미국에서 닷컴 붕괴가 일어나자 일본 주식은 또다시 곤두박질 쳤다. 2003년 봄 7.900선 마저 무너졌다. 거품이 빠져 나가면서 부동산 가격도 동시에 하락했다. 일본 6대 도시의 부동산 가격은 정점에 달했을 때보다 84%가 떨어졌다.

그때 도쿄 중심부에 자리한 황실의 부동산 가치는 미국 캘리포니아주 주 전체의 총 가치보다 높았다. 90년대 세계 15대 금융기관 중 12개가 일본 기관이었고 세계 10대 기업 중 6개가 일본 기업이었다. 미국의 경제전문가 레스터(Lester C. Thurow.)는 그때 말했다. 일본 경제 침체원인은 경제에 있지 않고 정치적 위기가 그 원인이라고 경고한 바 있다.

일본은 인플레이션 보다 더 무서운 디플레이션에서 쉽게 빠져 나올 수가 없었다. 그리고 또 10년, 이번에는 자연의 재난(지진, 쓰나미, 원전사고)이 그들의 발목을 잡았다. 세계 3대 신용평가사 중 하나인 피치가 한국 신용 등급을 AA-로 한 단계 상향 조정함으로써 해방이후 처음 일본과 중국을 앞서게 됐다고 흥분하고 있다. 그러나 삼패인을 터뜨릴 때는 아직 이르다.

한국의 외환 보유액은 7월말 현재 3.140억 달러 일본의 1조7.200억 달러에 비해 5분의 1수준이다. GDP 또한 한국 1조1.640억 달러, 일본은 5조9.810억 달러, 한국보다 5배 앞서 있다. 해방 후 한때 이런 말이 유행했었다. “소련에 속지 말고, 미국을 믿지 말자, 일본은 다시 일어난다, 조선아 조심하자.” 2012년 태평양 경제 협력체(APEC)정상회의 러시아에서 일본과 한국의 독도 문제로 껄끄러운 두 나라 기 싸움에 미국이 중간에서 수위 조절을 하고 있다. 중국이 끼어들어 일본을 밀어내고 세계 제2의 경제 대국이 되었다. 그런 중국이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