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그 뜨겁던 여름은 가고

2012-09-19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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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주영(주필)
올 여름은 유난히 뜨거웠다. 우리만 그런 것이 아니라 지구촌 모든 사람이 가히 살인적이라고 할 만한 태양의 열기에 몸살을 앓았다. 미국, 아프리카, 동부 유럽, 남미 등 거의 전 세계에 걸쳐 가뭄이 장기화돼 대지가 타들어 가면서 대규모 산불과 수확량 감소에 따른 기근 등으로 인류의 삶이 크게 위협을 받았다.

올 여름은 우리의 몸뿐만 아니라 마음도 뜨겁게 달궜다. 지구촌 사람들 모두 16일간 마음껏 웃고 울면서 감동과 환희, 웅장함과 위대함을 만끽했다. 런던 올림픽 덕분이었다. 참가 선수들이 혼신을 다하며 흘린 눈물과 땀방울이 우리 마음을 뜨겁게 했다. 그 화려하고 장엄한 결전의 무대에 이어 스파이스 걸스와 뮤즈의 공연, 거리파티 등으로 화려하게 장식된 폐막식조차도 우리를 열광하게 만들었다.

올림픽의 뜨거운 감동으로 오래 기억될 2012년 여름이 서서히 사라지고 있다. 열기를 온몸으로 발산하며 도발적인 매력을 한창 뽐낸 여름이 벌써 추억이 되어 시간 속으로 자취를 감추기 시작했다. 작열하는 태양아래 탐스런 푸성귀들을 길러내 우리의 눈과 입을 상큼하게 해줬던 텃밭도 이제 가을을 재촉하는 듯 여름의 끝자락을 내달리고 있다. 온통 초록으로 덮였던 산들도 조금 후 단풍으로 물들기 위해 낮에는 한층 더 강렬한 햇볕을 받으며 빠른 속도로 변신하고 있다.
가을이 임박하면서 햇살은 전 보다 더 밝게 내리 쬔다. 이따금 소낙비도 예고없이 퍼붓는다. 시간은 언제나 이렇게 예측할 수 없는 날씨를 반복해 보이며 자꾸만 흘러간다. 사람들도 찌는 듯한 무더위를 뒤로 하고 다가온 가을을 맞기 위해 발걸음이 빨라졌다. 어디로들 가는 것일까?


누군가가 인터넷에 올려놓은 시가 눈에 띄었다.
문득 저만치 가버리고 점점 멀어지는 여름이 아쉬워진다/ 일년을 기다려야 다시 오는 여름인데... 올여름 정말 뜨거웠다/ 어느 누군가는 몸에 땀띠가 날 정도로 뜨거운 여름이었다/ 제 할 몫 다하고 이제 갈 준비를 하나 보다/ 그대를 위한 가을의 노래는 비올라의 선율, 피카소의 색채/ 그대를 위한 가을의 사랑은 들국화의 향기, 갈대꽃의 몸 춤/ 세월의 어느 순간 나무 끝 흔드는 바람같이 그대를 위한 가을의 노래는 음, 음/ 그대를 위한 가을의 노래는 비올라의 선율, 피카소의 색채/...
이제 곧 길 모퉁이에 코스모스가 하늘거리고 가로수들이 형형색색으로 단장하며 노을 질 무렵 귀뚜라미 우는 소리가 들리는 아름다운 가을이 다가온다. 며칠 전 도심에서 멀지 않은 사찰에 들러 잠시 머리를 식혔다. 어디선가 바람이 솔솔 불어오고 여름의 꽃내음과 흙냄새가 코끝에 진하게 들어왔다. 이즈음 긴 추억의 그림자를 밟으며 자연 속에 들어가 잠시 숲의 소리를 느껴보는 여유를 가져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한순간도 헛되이 살지 않고 자신과 치열하게 투쟁하며 일생을 지혜롭게 살다 간 법정스님이 쓴 오두막 편지의 글 한토막이 한창 뜨겁게 달구어졌던 우리의 마음을 시원하고 잔잔하게 어루만져 주는 듯하다.
“내 소망은 단순하게 사는 일이다. 그리고 평범하게 사는 일이다. 느낌과 의지대로 자연스럽게 살고 싶다. 그 누구도, 내 삶을 대신해서 살아줄 수 없기 때문에 나는 나답게 살고 싶다.”

찬바람을 쐬면 정신이 번쩍 든다는 말이 있다. 벌써부터 아침, 저녁으로 제법 서늘한 바람이 분다. 한때 청춘같이 뜨거웠던 여름, 이제 흥분을 가라앉히고 그 뜨거웠던 열기를 맑고 쾌청한 하늘을 보면서 잠시 식혀보자. 폭염 속에 난리를 한바탕 치르고 난 후의 공허감... 이 마음의 공간을 무엇으로 채울까 생각해 보자. 사색이든, 독서든, 여행이든, 무엇으로든지 풍성하게 채울 준비를 해야겠다.
가파르고 힘든 세상, 이왕이면 서로에게 힘이 돼 주는 말과 정을 나누며 풍요의 계절 가을을 맞고 싶다. 이제 우리의 빈 가슴은 성숙함으로 풍성하게 채워질 것이다. 가을이 어느 계절보다 빛나고 아름다운 것은 그처럼 고통스러웠던 여름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juyoung@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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