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폭력은 해결책이 아니다

2012-09-17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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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효섭 (아동문학가 / 목사)

9월11일은 미국뿐이 아니라 온 세계가 잊을 수 없는 날이다. 뉴욕이 자랑하던 쌍둥이 빌딩, 세계무역센터가 두 대의 자살 비행기에 의해 무너지고 3,000명의 생명이 희생된 날이다. 사람의 머리로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대규모 테러였다.
이런 폭력으로 이룬 것이 무엇인가? 미 국민의 증오심을 돋운 것뿐이다. 인류는 지난 100년의 전쟁역사를 통하여 폭력이 해결책이 아님을 배웠다. 수많은 독재자와 군사혁명이 폭력으로 문제를 해결하려 하였으나 인류는 그 어리석음을 몸으로 체험하였다.

무장한 폭도가 예수를 체포하려 왔다. 힘은 힘으로 대항한다는 것이 상식이다. 제자 중 한 사람이 검을 뽑았으나 예수는 그를 말리고 “검을 쓰는 자는 검으로 망한다.”는 유명한 진리를 선포하셨다. 우수한 무기든, 강한 힘이든, 폭력은 해결의 길이 아니라 더 큰 폭력으로 확산하는 출발에 불과하다.


억센 자가 이길 것 같으나 온유한 자가 승리한다. 이솝의 우화처럼 억센 바람보다 따뜻한 해가 이긴다. 내 주먹이 클수록 저쪽도 큰 주먹을 준비한다. 이를 이로 갚는 것은 해결의 방법이 아니다. 최후의 승리는 사랑에 있다. 원수사랑은 비현실적이라고 흔히 생각하나 사랑이란 사랑할만한 대상을 선택해서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더 깊고 넓은 포용을 가리킨다.

지금 세계의 인권문제는 인종과 국적을 가리지 않는 범지구적인 사안으로 다루어지고 있다. 한국 어느 한 골목에서 발생하는 인권문제도 세계의 문제라는 뜻이다. 외국 파병의 당위성도 여기에 근거한다.

9.11 테러 사건이 터졌을 때 TV는 아랍 국가들의 거리 풍경을 보여주었다. 어른뿐이 아니라 아이들까지도 거리에 나와 테러를 축하하며 춤추고 노래하던 장면을 잊을 수가 없다. 이 아이들은 도대체 어떤 교육을 받았기에 테러를 찬양하는 것일까? 하기야 이 세상에는 독재자를 맹종하는 국가들, 빗나간 교주를 맹신하는 종교인들, 전쟁을 찬양하고 테러분자를 영웅시한 역사도 적지 않았다.

어쨌거나 폭력을 정당화하고 폭력을 가르치는 것은 주의, 사상, 신앙, 체제를 막론하고 악마적인 죄악이다. 폭력은 주먹이나 총질뿐이 아니다. 눈 흘김 한 번이 증오의 씨가 될 수 있고, 말 한 마디가 사람을 죽일 수도 있다. 과격한 언사, 남의 속을 긁는 말, 모욕적인 행동, 부정적 비평 등이 모두 폭력이다. 예수가 굴욕적인 십자가형을 감수하면서도 인류에게 가르친 것은 사랑이 폭력을 이긴다는 진리였다.

특히 한반도의 경우 평화와 통일은 맞물려 있다. 통일 없이 한반도의 평화는 생각할 수 없고, 평화의 방법을 통하지 않고 조국의 통일은 무의미하기 때문이다. 평화는 나를 반대하는 자를 제거함으로 오지 않는다. 예수는 “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이다.”고 선언하였다. 주먹으로 평화가 유지되는 것이 아니라 평화를 사랑하는 자들의 한결 같은 노력에 의해 평화가 올 수 있다는 뜻이다.

맹수들도 동족끼리 싸우지만 죽이기까지는 하지 않는다. 이런 점에서 사람은 맹수보다 더 독하다. 방울뱀은 치명적인 독침을 가졌지만 저희들끼리 싸울 때는 절재 독침을 사용하지 않는다. 개싸움을 보아도 한쪽이 꼬리를 감으면 더 이상 공격하지 않는다. 화해가 쉽게 이루어지는 것이다. 사람들의 싸움은 수십 년 동안도 계속하지 않는가! 이 점은 사람들이 동물에게 배워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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