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기자의 눈/ 지크 사태의 피해자 아닌 피해자

2012-09-13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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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지하(사회1팀 기자)

50대로 추정되는 한 여성이 신문사로 전화를 걸어와 대뜸“왜 우리 회사를 모욕하느냐”는 말부터 꺼냈다. 목소리가 격앙됐기에 금세 흥분된 상태임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보도 내용에 불만이 있는 게 분명했다.

이 여성을 겨우 진정시키고 자초지종을 들어봤다. 그녀는 자신을 얼마 전 대형 피라미드 폰지사기로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지크 리워드’<본보 8월21일자 A1면>의 가입자라고 소개했다. 그리곤“지크 리워드는 사기회사가 아니다”는 주장과 함께 “멀쩡히 배분받던 수익금을 더 이상 못 받게 돼 심각한 피해를 보고 있다”고 말했다.


지크사의 갑작스러운 폐쇄조치로 대부분의 가입자들이 1,000달러에서 최대 1만 달러를 뜯기는 피해자가 됐다면, 이 여성은 정기적으로 받아오던 수익금을 더 이상 받지 못해 자신이 피해자라는 다소 황당한 주장을 했다. 특히 지크사는 조만간 회생할 터인데, 언론이 앞 다퉈 보도하느라 다시 살아날 가능성마저 줄어든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폐쇄조치를 받기 전까지 지크사의 사업방식은 전형적인 다단계(Multi level)회사의 구조를 갖추고 있었다. 그래서 상층부에 위치한 초창기 가입자(혹은 투자자)들에겐 실제로 수익금이 배분되기도 했다. 신문사에까지 전화를 걸어와 하소연을 했던 중년 여성도 초창기 가입자의 입지를 굳혀온 게 분명했다. 하지만 지크사는 여느 다단계 회사들과 달리 제대로 된 수익구조가 없다는 큰 문제를 안고 있었다.

그 대신 지크사는 대외적으로 자신들이 운영하는 온라인 사업체의 수익금을 가입자들과 나누겠다고 공언했다. 단순히 투자만 받기가 민망했던지 이들은 자신들이 지정한 웹사이트에 광고를 올려야 한다는 조건을 붙였다. 가입자들은 하루 1시간미만을 투자해 지크사의 지시를 따랐고, 이들 중 일부가 수익금을 현금화했다.

결국 지크사는 새로운 가입자들의 투자금을 기존 가입자들에게 수익금으로 분배하는 방식으로 사업을 운영해 온 사실이 드러났다. 쉽게 말해서 돌려 막기, 즉 전형적인‘폰지 사기’였던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신문사에 전화를 걸어온 여성을 그녀의 주장대로‘피해자’의 반열에 놓기엔 다소 불편한 부분이 많다. 물론 하루 몇 번의 클릭만으로 쉽게 벌던 돈이 끊겼다는 게 아쉬울 순 있겠지만, 그녀가 챙겨왔던 수익금이 결국은‘진짜 피해자’들이 손해를 본 돈임을 부정할 순 없기 때문이다.

한 경제학자는‘폰지 사기’를“지속 불가능한 경제행위”로 요약했다. 그녀가 지크사로부터 높은 수익률을 보장받았을지 모르지만 언젠간 끝날 문제였다는 말과도 같다. 차라리 조금이나마 빨리 끝난 게 다행이라면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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